미국편 (4) 인기 대통령 레이건 뒤 제작자 겸 총감독 낸시 레이건

탕탕탕’ 취임 세 달째 접어들던 81년 3월 30일.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워싱턴 힐튼호텔에서 오찬 연설을 마치고 나오다 존 힝클리가 쏜 흉탄을 맞았다. 그는 즉시 인근 조지워싱턴 병원에 실려가 총탄 제거 응급수술을 받았는데, 이 와중에도 “여보, 내가 엎드리는 것을 깜빡 잊어 버렸어”라고 웃겨 당시 온 나라에 가득 퍼진 위기감을 사그라지게 했다.

다행히 총알은 심장을 비켜나가 레이건 대통령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퍼스트레이디 낸시 레이건 여사는 일종의 편집증에 사로잡혔다. 대통령의 일정을 석 달 전에 미리 챙겨서 점성사와 길일과 흉일, 군중 앞에 나가지 말아야 할 날 등을 미리 상의한 뒤 최종 확정했다. 레이건 행정부 최악의 악재인 이란―콘트라 사건에서도 그녀는 대통령의 해명 기자회견 날짜를 점성가의 충고에 따라 잡았다.

레이건이 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자 레이건 부부의 정치활동은 시작되었다. 낸시는 인사건 정책이건 정치건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문제에 간섭했다. 레이건은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직무는 대통령처럼 연기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제작자 겸 총감독은 낸시였다.

레이건은 인사권을 자기 아내에게 상당 부분 위임했다. 그녀의 판단에 따라 레이건의 측근들이 결정되었다. 그녀와 호흡을 맞추었던 조지 슐츠, 마이클 디버, 짐 베이커, 하워드 베이커, 그리고 보브 스트라우스 등은 레이건을 금세기 최고의 인기 대통령 중 한 사람으로 만든 참모들이었다. 낸시 스스로도 회고록에서 “나는 주로 인사문제에 관해서만 제안했다”면서 “만약 대통령 참모 팀에 퍼스트레이디를 포함시켰더라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좋았을 것”이라고 말해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짐짐 베이커 비서실장, 마이클 디버 부실장, 에드윈 미즈 백악관 고문 등은 레이건 1기 행정부를 성공적으로 이끈 유능한 참모 트로이카다. 이들은 대통령을 잘 보좌하기 위해서는 낸시 여사와 한 팀을 이룰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공보를 담당했던 디버의 하루 일과는 낸시에게 전화를 거는 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레이건 2기 레이건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이 된 도널드 리건은 달랐다. 그는 낸시를 무시했다. 대통령의 스케줄은 백악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 그것이 퍼스트레이디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점성술사에게 넘겨줘야 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그러자 리건은 이란-콘트라 은폐 사건의 위기가 고조될 무렵인 87년 돌연 경질 당하고 말았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퍼스트레이디가 바꿔치기 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지만 곧이어 상원의 워터케이트 조사위원회 부위원장 출신인 하워드 베이커가 후임 비서실장으로 기용되면서 이란-콘트라 은폐 스캔들을 일거에 잠재우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녀는 에디스 윌슨 이후 대통령에게 가장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퍼스트레이디로 평가된다. 물론 그녀는 로절린 카터처럼 내각회의에 참석하지도 않았고, 힐러리 클린턴처럼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서관에 자기 사무실을 두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유일한 관심은 대통령을 돌보는 것이었다.

인사권 센 입김…마약 반대 국제회의 주축 등 맹활약

레이건은 미국의 기수를 오른쪽(보수)으로 돌렸고 공산주의의 몰락을 앞당기는 씨를 뿌렸다. 그의 위업은 저격사건과 건망증, 약한 청각, 전립선 수술 등에 시달렸던 남편을 국민의 주시로 보호했던 낸시의 내조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낸시는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남성인 제임스 로즈 부시를 발탁함으로써 퍼스트레이디 최초의 첫 남성 참모장의 탄생을 가져왔다. 그녀는 또 세계의 퍼스트레이디들이 중심이 된 마약 반대를 위한 국제회의를 이끌었으며, 세계 최초로 퍼스트레이디로서 유엔에서 연설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레이건은 퇴임 후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 이후 2004년 6월 타계할 때까지 10년 동안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생활을 했는데, 낸시가 그가 남긴 업적이 치매로 얼룩지는 것을 막아왔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낸시는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가장 전통적인 퍼스트레이디라고 할 수 있다. 낸시가 여러 가지 기여에도 불구하고 역대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중 하위권에 속하는 평가(시에라 대학의 역대 퍼스트레이디 조사)를 받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녀는 2002년 봄에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공로로 의회로부터 메달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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