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지방으로 강연을 다니던 20년 전만 해도 내 마음 속에는 벽이 있었다. 혹시 내 말이 너무 앞서 가거나 혹은 너무 서울 중심이어서 듣는 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강연을 들으러 모인 여성들의 옷차림만큼이나 그때는 분명 서울과 지방 도시 사이에는 무언가 차이가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 전국 어느 도시든지 가 보라. 길거리에 다니는 여성들의 옷차림이 전국적으로 평준화되었음을 누구나 단박에 알 수 있을 거다. 노소를 불문하고 모두들 패션 리더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만큼 멋진 차림새들이다(남자들은 아직 차이가 보이지만).   

겉볼안이라고 옷차림뿐만 아니라 여성들의 의식도 함께 평준화된 것 같다. 요즘은 어딜 가도 벽을 느끼지 못한다. 자녀 교육이나 여성의식 또는 노년 설계 등을 주제로 하면서 내가 늘 부르짖는 말은 결국 “백세 시대, 우리의 여성 일대기를 다시 쓰자”는 결론으로 모아진다. 자칫하면 백 살까지 살지도 모를 시대를 맞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 자신의 몸을 사랑하고 경제적 심리적으로 독립하며 가족, 특히 자식에게 올인하지 말고 사회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서 지금부터 인생 계획을 새로 짜자는 이야기이다. 나이 50, 60도 다 산 것이 아니니 공연히 자식들한테 응석 부리지 말며 품위 있게 나이 들기 위해서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잘 죽자는 이야기인데, 실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한테 다짐하는 말이다. 요즘 이런 생각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냥 여태까지 산대로 대충 살아도 되는 걸 갖고 공연한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것 같아 어떤 때는 스스로 켕길 때도 있다(실제로 얼마 전 한 60대 남성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살 거 뭐 있느냐”며 자신은 아내가 못마땅하게 생각하든, 며느리가 싫어하든 그냥 생긴 대로 살겠노라며 버럭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래서 강연을 마친 후 “당신은 너무 현실을 모른다”는 비난을 들을지도 모르겠다고 잔뜩 긴장하곤 하는데 신기하게도 번번이 예상이 빗나가곤 한다. 오히려 그들이 더 앞서 나갈 때도 많다. 나이 쉰에 대학에 들어간 여성들도 여럿 만났으며 손자를 돌보는 시간을 쪼개서 병원에 자원봉사 나가는 할머니도 만났다. 늙어가면서 마음공부하지 않으면 자칫 고집 세고 편협한 노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시하는 70대 여성들도 꽤 있었다. 무엇보다 세대를 불문하고 대다수 여성들이 가족 이외에 죽을 때까지 마음을 쏟을 일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불과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한국 여성들의 의식이 이토록 달라지다니, 정말 엄청난 변화다.

지난 주 포항과 통영에 다녀왔다. 포항에선 독후감대회 시상식에 저자 자격으로 초청받았는데 그날 대상을 받은 농민 여성의 낭독을 듣고 가슴이 찡했다. 농민 여성은 자신을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맞벌이 여성으로 규정하면서 이 땅의 모든 맞벌이 여성이 겪는 어려움에 짙은 자매애를 느낀다고 고백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21세기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통영. 지난해 여성신문사가 ‘여성이 살고 싶은 곳’ 첫 번째로 뽑았던 통영은 여전히 아름답고 포근한 모습으로 거기 있었다. 나는 놀랐다. 이토록 풍광이 뛰어난 이곳 여성들에게 어떤 힘이 있기에 인구 12만의 도시에서 1000명이 넘는 여성을 여성대회에 불러들일 수 있었을까.

규모가 크다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지만 흔히 조직력이 약하다는 점이 여성들의 약점으로 거론될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세대를 망라한 여성들을 그만큼 결집시키고 또 시장을 비롯한 남성 유지들을 대거 참석시킨 조직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프로그램도 다채로워서 합창단과 품바 공연, 사물놀이 등이 흥을 돋웠는데 공연자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니 이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여러 세대가 어우러졌다. 무엇보다 뜻 깊은 프로그램은 결혼여성이민자들과 여성단체들의 결연행사였다. 모든 벽을 허물고 서로 따뜻하게 손을 잡는 그 모습에서 여성운동의 비전이 보였다면 오버일까.

여성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단지 구호가 아니다.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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