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3545’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나이를 잊고 이 말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무용 공연이 열릴 예정이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22일 오후 4시 정동극장과 25일 오후 8시 과천시민회관에서 개최되는 ‘발레 3545’가 바로 그것. 전 세계에서 활약 중인 30∼40대의 중견 무용수 18명이 꾸미는 무대다.

공연을 기획한 사람은 김인희(43)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그의 제안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활동 중인 무용수들까지 모여들었다. 독일 뒤셀도르프 발레단의 허용순(42)씨, 러시아 국립발레단의 주역 무용수였던 김순정(46)씨, 아이가 둘이라는 국내 유일의 ‘아기 엄마’ 발레리나인 서울발레시어터의 연은경(39)씨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최연소인 유니버설발레단의 강예나(31)씨에서 최고령인 백연옥(47)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 예술감독까지, 이들 출연진의 평균 연령은 마흔이다. 국내 최고령 발레리노인 정운식(39) 서울발레시어터 지도위원과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최고령 발레리노인 신무섭(36)·황재원(36)씨 등 남자 무용수들도 합세했다.

장웨이창,김인희
▲ 장웨이창 · 김인희
백연옥
▲ 백연옥
곽규동,이유미
▲ 곽규동 · 이유미
김인희 단장은 국내 무용수들의 무대 수명이 외국보다 짧은 것을 안타까워하며 이번 공연을 마련했다. 국내 발레리나의 전성기는 20대 후반, 30대 중반만 넘어서도 한계로 여기고 토슈즈를 벗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김 단장은 “후배들에게는 나이가 들어서도 무대에 설 수 있다는 자극을 주고 중견 무용수들에게 활동 영역을 넓혀주기 위해 이번 공연을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그동안 중견 무용수들의 개인 발표회는 간간이 있어왔지만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는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무용수들이 총출동하는 만큼 이번 공연의 메뉴는 클래식에서 모던발레까지 다채롭다. 한국 발레 팬들에겐 국내외 무용 흐름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배움의 자리를 제공한다.

김순정씨는 안정된 교수직을 포기하고 40세 나이에 3년간의 모스크바 유학을 떠났던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유학에서 돌아온 2003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후배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그가 직접 안무한 ‘페넬로페 2006’은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기다리며 직물을 짜고 또 짜는 여인 페넬로페를 그린 작품. 끊임없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하는 예술가의 운명을 상징한다.

선화예고 재학 중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 26년간 유럽에서 주목받는 한국인 무용수 및 안무가로 활약한 허용순씨는 살아가면서 느끼는 놀람, 호기심, 두려움, 후회, 허탈감 등 다양한 감정들을 보여주는 ‘Impurse’를 선보인다.

가녀린 선으로 소녀 같은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백연옥씨는 한국발레협회 이사, 한국무용학회 이사, 세계무용센터 이사 등 한국 무용계의 발전을 위해 애써온 인물. 발레뿐 아니라 한국무용까지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혀 온 그는 정운식씨와 함께 고려가요 ‘가시리’를 배경음악으로 한국 고전과 발레의 만남을 시도한다.

18세에 러시아 키로프발레단원, 20세에 유니버설발레단 수석 무용수를 거쳐 98년 아메리칸 발레시어터에 한국인 최초로 입단하는 등 ‘발레 신동’으로 불리며 국내 팬들에게도 유명한 강예나씨. 그는 ‘한국의 바리시니코프’로 불리는 황재원씨와 인도의 무희를 그린 이국적인 낭만발레 ‘라바야데르’를 통해 독특한 클래식 래퍼토리를 선사한다.

이들의 만남은 이번 공연으로 그치지 않는다. 서울발레시어터 남세빈 홍보팀장은 “이번 공연을 계기로 매년 중견 무용수들이 모이는 합동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입장료는 1만∼5만 원. 문의 02-3442-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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