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성단체연합(여연)의 회원단체 멤버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현재도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여성운동의 틀 안에서 발을 담가왔던 모임들은 여연과 일정 정도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워낙 경계가 희미한 성향이라 별스런 잣대를 들이대 여연과의 관계에 획을 그어본 적도 없었다. 각자가 제 자리에서 제 몫을 하면 그걸로 족한 거니까. 그렇게 여성운동의 언저리를 맴돈 시간이 꽤 쌓이다 보니 어느새 여연과 관련된 몇 가지 활동에 끼어들게 되었다. 물론 안이 아니라 바깥에서.

생뚱한 일이지만 몇 년 전 여연에서 감사를 맡아 달라고 해서 한동안 여연의 살림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시민단체들, 그 중에서도 여성단체의 재정이야 안 보고도 척이지만 그래도 난 솔직히 여연은 어느 정도 ‘있는 줄’ 알았다. 창립 이후 쉼 없이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한 엄청난 일을 주도해왔었기 때문이고, 게다가 내가 만나온 여러 멤버들에게서 언제나 당당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투명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그 적은 예산에 우선 놀랐고, 특히 인건비의 숫자를 확인하곤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대표는 또 그렇다 치고 젊고 뛰어난 인재들이 이런 보수를 받으면서도 여성운동에 헌신하게끔 하는 매력이란 과연 무엇일까. 회의 때 내놓은 몇 푼의 과자 값까지 꼼꼼하게 기록된 자료를 들추는 내내 나는 공연히 미안해졌다. 뜻과 돈이 함께 할 수 있는 길이 없을까, 평소의 안타까움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런 마음이 나중에 멤버들에게 후원회의 필요성에 대해서 제언을 하게끔 이끌었던 것 같다. 그 후 후원회가 실제로 만들어졌고 난 기꺼이 회원이 되었다.(아직까지 약속한 평생후원회비를 미납한 불량 회원이지만)

당시 여연이 들어 있던 건물은 9개 여성단체와 한 독일 후원기관(그때까지도 외국의 도움을 받아야 했으니 참, 민망스럽다!)이 힘을 합쳐 마련한 4층짜리 ‘여성평화의 집’이었다. 집 없이 떠돌던 시절에 비하면 황공무지였겠지만 내 눈에도 그 집은 너무 좁고 낡아 보였다. 적절한 비유일지 자신이 없지만 마구 움직이고 싶어 하는 몸집 큰 아이를 좁은 상자에 우겨 넣은 것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럴싸한 공간을 갖고도 아무 일도 못하는 것보단 누추한 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보기에 썩 좋았다.

그런데 이번에 여연과 그 건물에 함께 들어 있던 여성단체들이 큰일을 도모했다. 말 그대로 번듯한 새 집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다. 60억 원이 들어갈 여성미래센터를. 60억이란 숫자를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너무한 거 아냐? 싶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곧이어 든 생각은 아, 이젠 여성운동이 이만큼 컸구나라는 감회였다. 그토록 알뜰하고 쫀쫀한 여성운동가들이 이런 액수를 겁 없이(?) 말할 만큼 배포가 커졌다는 건 놀랄 일이 아니라 반가워해야 할 일로 보자라는 마음이었다.

물론 그 배포에 대해서 좋지 않은 눈으로 볼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것은 여성운동을 하던 사람들, 특히 여연 출신 활동가들이 정부의 고위직으로 들어간 것을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라고 하겠다. 여연이 초심을 잃고 권력 지향적이 되더니 이젠 권력을 과시한다는 의혹도 피하기 어렵다. 추진위원 모임에 정부에 몸담고 있는 여성들이 여럿 참여한 것도 한 일간신문에서는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문제는 여연을 중심으로 한 여성운동권이 과연 초심을 잃었느냐인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는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중심으로 들어가지 말고 주변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지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존중한다. 단 의회에 들어갔든, 정부에 들어갔든 여성운동의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는 믿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란 존재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내가 보기에 영 웃기는 경우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절대 다수는 무엇을 하든 초심을 지키는 것으로 보여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아무튼 여성미래센터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기를 바란다. 그곳에서 여성운동의 새 시대가 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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