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드디어 명실 공히 할머니가 됐다. 첫 손자가 태어난 거다. 출산 예정일보다 겨우 이틀 늦었는데 그 이틀이 문자 그대로 여삼추였다. 내가 첫애 낳을 때는 2주일이나 늦게 낳았어도 그러려니 했었구먼, 바다 건너 손자는 예정일 1주일 전부터, 요즘 아기들은 성질이 급해서 예정일 전에 나온다던데 얘는 왜 이리 늑장을 부리나, 안절부절못했다.

진통이 있어 병원에 들어갔다는 전화를 받은 지 하루가 다 가도록 무소식이니 머릿속에서 또 온갖 시나리오가 떠돌아 다녔다. 차라리 내가 낳는 게 낫다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오래 끈 것도 아니고 난산은 더더욱 아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자식 일이라 공연히 애가 쓰여서 그 난리였던 거다. 이러니 나이는 못 속이나 보다.

하루 종일 정신이 몽롱해서 일이 손에 안 잡히더니 저녁 먹을 무렵에야 소식이 왔다. 산모는 건강하냐, 아기도 건강하냐, 손가락 발가락 다 있느냐 속사포를 쏘아댔다. 성별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 물을 필요도 없었다. 만약 성별을 몰랐다면 어땠을까, 혹시 그것부터 물었을까?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다잖아. 아무튼 나 스스로도 궁금하다.

손자 본 소감이 어떠냐고요? 한마디로 감동이지 뭐. 내가 아이를 낳던 기억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그 애가 자라서 또 애를 낳다니, 나중에 키우는 일이야 어떻게 될값에 아들과 며느리가 이렇게 장해 보일 수가 없다. 아들 가진 엄마도 이럴진대 딸 가진 엄마는 오죽 대견스러울까. 아무리 겸손하려 애써도, 여성은 위대해.

그동안 컴퓨터를 쓸 때마다 컴퓨터 중독이 어떻고 저떻고 구시렁거렸지만 이번만은 인터넷 시대 만세다. 이틀도 안 돼 아기 사진이 우르르 날아오더니 어젠 동영상까지 보내왔다. 사진만 봐도  콧등이 시큰해지는데 내 눈 앞에서 고물고물 움직이는 사진이라니, 감격한 이 할머니,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저절로 아기 이름을 부르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이름을 부르니 고 초롱초롱한 두 눈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닌가. 에휴, 고 놈, 영특하게도 생겼구먼.

그리고, 참 쑥스러운 고백이지만, 손자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내 속에서 뭔가 스멀스멀 움직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름 하여 할머니로서의 정체성이라고나 할까. 이 귀한 생명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눈꼽만큼이라도 기여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사명감 같은 것이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나보다 먼저 할머니가 된 친구들은 말한다. 손자를 보듯 내 자식을 키웠으면 훨씬 잘 키웠을 거라고. 손자를 보고 있으면 생명 그 자체의 존귀함이 느껴지기 때문에 쓰잘데 없는 욕심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자를 보고 있으면 이 조그만 생명체가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갈 것이 안쓰럽기만 하고, 그저 별 탈 없이 착하고 건강하게 커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된단다. 무슨 전교 1등이니, 돈이니, 출세니, 그런 것들이 하잘것 없이 느껴지는데 왜 자기 자식을 키울 때는 그걸 몰랐는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아이도 괴롭고 엄마도 괴로운 일을 그러려니 하며 보낸 지난날이 후회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되풀이되는 법. 할머니는 그렇게 키우고 싶어하나 정작 그 부모들은 또 다른 것 같단다. 하긴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뒤떨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할머니의 육아법이 부모들에겐 한 치 걸러 두 치에서 오는 심리적 거리라고 생각되겠지.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세대 간에 존재하는 육아법의 차이는 고부갈등의 큰 요인으로 꼽히기 마련이다.

어쨌든 내가 하는 할머니 노릇은 절대로 부모보다 앞서면 안 될 것 같다. 그저 뒤에서 조용하게 보살피고 싶다. 부모들이 여유롭고 즐겁게 아기를 키울 수 있게끔 조금씩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을 뿐이다. ‘아기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전국 할머니 연대’ 같은 걸 만들어 볼까나.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