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시험에선 목숨 걸 것처럼 치열하더니 정작 입사해선 왜 그렇게 금방 맥이 빠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여자들은 입사 자체가 목적인 모양입니다.”

“그 똑똑하던 여직원들이 입사해서 2년만 되면 남자 동료들한테 일을 배우는 입장이 되더군요.”

“아무리 여자들을 오래 쓰고 싶어도 2년 안에 80퍼센트가 그만 두니 회사로선 손해가 많아요. 우리 회사의 경우 남자들은 한 번 들어오면 나가는 법이 없는데요.”

그래서 앞으로는 여자들을 가능한 한 안 쓰겠단다. 좀 떨어지더라도 남자들을 쓰겠단다. 탄탄하다고 소문난 IT관련 업종을 경영하는 한 중소기업인의 말이다. 그 회사의 임금은 한국 최고의 대기업에 비해 적지 않다고 했다.

여성의 직업의식을 탓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입이 쓰다. 여성의 취업률이 아주 낮았던 30년 전에도 수없이 들어야 했던 내용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요즘에는 여성의 능력 자체를 헐뜯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정도. 사실 이것만 해도 대단한 발전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의 능력에 대해서 폄하한다면 즉각 반박할 말이 백 만 가지는 되는데 구체적인 실례를 가지고 여성의 직업의식을 비난하는 경우엔 별로 변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구나 지금 이 경우처럼 남녀를 똑같이 대우하려고 애썼다고 자부하는 기업인을 만났을 때는.

나는 시인도 반박도 안 하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애꿎은 맥주만 마셔댔다. 그 기업인은 머쓱했는지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했다며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고 보면 여자들은 간이 아주 작아요.”

“?”

“여자들은 1500만 원이 굉장히 큰돈이라고 생각하나 봐요.”

“?”

그의 풀이는 이랬다. 자기 회사를 1년쯤 다니면 대략 1500만 원을 저축할 수 있단다. 일단 통장에 1500만 원이 모이면 여자들은 갑자기 자신만만해지는 모양이란다. 그리하여 세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주저 없이 사표를 쓴단다. 첫째는 ‘돈이 없어서’ 못 갔던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 둘째는, 역시 대학시절 돈이 없어 못했던 어학연수를 간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론 해외유학을 떠나는 남자친구를 따라 해외로 나간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 능력을 더 쌓아 더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는 훌륭한 커리어 경영 작전이 아니냐는 반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몸값을 올리는 데는 현장경험을 더 오래 쌓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배운다며 시간을 보내는 사이 공연히 나이만 더 먹을 뿐 실제로는 오히려 마이너스란다.

반면 남자들은 1500만 원을 큰돈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모으기 위해 계속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었다. 이런 차이는 결국 남자는 일을 경제적 동기로 택하는 반면 여자는 대부분 경제적 동기보다는 자아실현의 동기를 앞세우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여자들이 정말 양성평등을 추구한다면 이 차이를 깨부수어야 한다고 그 기업인은 열변을 토했다. 비록 표현은 점잖았지만 그는 솔직히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왜 남자들에게만 생계부양의 책임을 지우는 거야, 여자들도 죽기살기로 일하란 말이야!

물론 대부분의 여성들이 경제적 동기로 취업하는 현실을 무시한 일방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적어도 일부 중산층 고학력 여성들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었다. 아무렴, 앞으로는 남자들한테 생계를 떠넘길 수야 없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