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세기 피카소’전

20일 개막한 ‘위대한 세기-파블로 피카소’전이 첫 주말 동안 2만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9월 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80여 년에 걸친 작가 인생 동안 5만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기며 20세기의 수많은 미술사조를 거쳐온 그의 대표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

그동안 국내에서 소개된 피카소의 작품이 판화 위주의 전시였던 것과 달리 이번엔 유화 50여 점이 주된 구성품. 그 외 과슈와 파스텔 데생 30여 점과 판화 60여 점 등 총 140여 점이 전시되며 가격 총액만도 6000억 원에 이르는 국내 단일 작가 전시 사상 최대 규모의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피카소와 사람들’을 테마로 삼아 그가 사랑했던 7명의 여인의 이름을 따서 전시장을 구성한 점이다. “다른 사람이 글로 자서전을 쓸 때 나는 그림으로 내 자서전을 쓴다”고 고백했던 피카소를 이야기할 때 그가 만났던 사람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중에서도 7명의 여인은 그의 작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작품이 변모해 가는 표현양식의 시기적 변화와 거의 일치한다.

슬픈 초상으로 남은 도라 마르
피카소를 비춘 거울, 페르낭드 올리비에부터 자클린느 로크까지

피카소의 예술세계에 영향을 준 여인들 중 가장 당당한 모습을 보인 두 여성을 모델로 한 작품.
▲ 피카소의 예술세계에 영향을 준 여인들 중 가장 당당한 모습을 보인 두 여성을 모델로 한 작품.
한작가의 연대기를 이를테면 청색시대, 장미시대 등으로 구분하는 대신 그 작가와 함께 한 여자들, 이를테면 영자시대, 순자시대 하는 식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 그럴 수 있다. 그 작가가 피카소라면.

‘위대한 세기 피카소’의 전시장 동선은 연대기적 흐름을 따르고 있으며, 그 구분의 핵심은 역시 피카소가 사랑한 일곱 여인들 순이다. 그래서 페르낭드 시대, 에바 시대, 올가 시대, … 하는 구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주최 측은 피카소의 복잡한 여자 관계를 친절한 도표로 정리해 이해를 돕고 있다.

젠슨의 표현처럼 ‘공연히 슬픈 척하던 청색시대’의 피카소가 우울한 색조에서 벗어나 장미시대로 넘어가게 되는 것은 모델인 페르낭드 올리비에와의 만남을 통해서였다. 누구를 만나 사랑에 빠지느냐에 따라 모델의 얼굴이 달라질 것은 당연한 노릇이겠으나, 피카소의 경우 작품의 스타일까지 따라 변한다. 이미 소년기에 미술 기량의 최고조에 달했다는 피카소는 역시 같은 시기에 성에 관해서도 모든 것을 독파했다. 스스로 “나는 페니스로 그림 그린다”고 한 그에게 섹스와 연인은 예술 영감의 원천(fountain)이고 분수(fountain)였다!

첫 번째 연인 페르낭드 올리비에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떠나가 버리자 허탈과 해방감을 동시에 느낀 피카소는 에바 구엘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이 시기 큐비즘이 완성된다. 그녀가 병으로 요절한 뒤 발레리나 올가 코클로바를 만나 첫 번째 결혼을 하면서 실험보다는 사실주의로 회귀하게 되고, 올가에게 염증을 느낀 피카소는 라파예트 갤러리 앞에서 30세 연하의 마리 테레즈를 만나 길고 긴 외도의 길로 나선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파트너는 화가이자 사진작가였던 도라 마르. 그녀와의 동거 7년 동안 스페인 내란이 있었고 그는 분노하며 그 유명한 ‘게르니카’를 완성한다. 피카소를 버린 최초의 여인으로 기록된 법학도 프랑수아즈 질로가 뒤를 이었고, 마지막으로 피카소의 임종을 지킨 40세 연하의 두 번째 부인 자클린느 로크가 있다.

그가 평생토록 남긴 5만여 점의 작품 중 일부는 그의 애인 혹은 부인들 그리고 직계 후손들에게 나누어졌고, 파리 마레 지역의 여러 피카소 미술관들은 그들이 작품 상속세 조로 지불한 작품들을 챙겨서 만들어졌다.

피카소의 연인들을 순례하듯 전시장을 돌면서 가장 가슴에 맺히는 인물은 ‘게르니카’ 속의 ‘우는 여인’으로 잘 알려진 도라 마르였다. 최근 그녀의 초상이 뉴욕 소더비 경매 사상 두 번째 최고가로 팔렸다거나, 그녀가 피카소로부터 받았으나 처분하지 않은 유산 100여 점의 가격이 420억 원을 호가했다는 따위 가십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도대체 왜 늘 우는 여인이었을까?

초현실주의 예술가이자 좌파 지식인이었고 1930년대 파리 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사진작가로 떠올랐던 도라 마르. 돌고래 혹은 인어의 모습을 닮았다는 해저동물 듀공을 클로즈업한 듯한 그녀의 사진은 기이한 환상을 일으키며 잊을 수 없는 초현실적 풍경으로 기억된다. 원시적이고 성적인 상상력을 일으키는 초현실주의 여성 화가 오펜하임의 ‘모피 아침식사’(모피를 씌운 찻잔세트와 스푼)를 처음으로 사진에 담은 이도 도라 마르였다. 시인 엘뤼아르의 소개로 카페 마고에서 피카소와 만나 7년 동안 동거했던 도라 마르는 피카소의 수많은 연인 중에서 가장 지적이고 도발적인 여인이었다. 예술적 동반자로서, 또 연인으로서 사랑과 예술 사이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한 도라 마르의 시도는 피카소라는 거대한 그늘에 가려 방황과 좌절로 점철된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도라 마르를 내세운 소설 ‘내 안의 미노타우로스’(니콜 아브릴 지음)의 한 구절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싶어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그린 그림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 보물을 보고 싶어했다. 얼마나 군침이 도는 보물인가? 이 전리품을 놓고 갖은 소문이 나돌았다. 도라? 피카소에게 한점 한점 착실하게 얻어 챙긴 여자. … 주인공은 명성을 얻는 대신 정체성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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