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 컨츄리’

니키 카로 감독의 ‘노스 컨츄리’는 ‘여성으로서 일하는 고통’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영화는 ‘젠슨 대 에벨레스 광산’이란 직장 내 성희롱 소송 사건을 통해 일하는 여성의 고질적인 고통과 그들이 감내해야만 했던 남성적 언어의 폭력을 다루고 있다.

남편의 상습적 구타에 지친 조시 에임즈는 두 아이를 데리고 고향인 북부 미네소타로 돌아온다. 미용실에서 머리 감겨주는 일을 하면서 두 아이를 키워보고자 전전긍긍하던 그가 택한 것은 미용실보다 6배나 많은 임금을 주는 탄광일. 예상하다시피 탄광에서의 일은 여성이 해내기엔 너무 위험하고 고된 작업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육체적 고통보다 더한 모멸과 폭력이 탄광 속에 매설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동료라고 부르기조차 꺼려지는 남자들, 그들이 던지는 ‘폭력적 농담’이다.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는 장난과 악의적 괴롭힘의 한계에 대한 고찰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 곳곳에서 흔히 남자들끼리의 농담이라고 허용되는 성적 희롱과 무례가 발견된다. ‘담배 한 대 나눠 피우지?’ 라면서 윗섶 주머니를 건드린다거나 ‘누가 오늘 내 파트너가 돼줄 거지?’라는 식의 파렴치를 농담이라고 내뱉는 남성들. 그러나 이 파렴치와 무례는 탄광은 원래 남성 사회였다는 이유로 반복되고 자행된다. 그들은 ‘농담’이라는 미명 아래 성적 폭언을 던지고 모멸적 추행을 거듭한다.

문제는 그 농담에 발끈해 거부감을 토로하거나 저항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여자들은 비사회적인 존재로 축출 당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하기 위해 여자들은 모멸의 세계에 동참하거나 그 감각을 마비시킬 수밖에 없다. 잠자코 견디면 지나갈 일이라는 식의 오래된 피해의식이 그들을 점점 더 힘들게 만든다. 조시가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할 때마다 그들은 곤란에 처하게 된다. 어떤 일이든 상의하라고 다정하게 손을 내밀던 사장 역시도 다를 바 없다.

재판 현장과 조시의 과거를 오가며 카메라는 담담히 한 여자의 삶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선생님에게 강간을 당해 미혼모가 된 조시, 2004년 영화 ‘몬스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샤를리즈 테론은 한 여자의 고군분투를 호소력 있게 전달해 주며 올해 다시 한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일하고 싶으면 견디라”는 강요, 서글프게도 저 멀리 ‘노스 컨츄리’에서 벌어지는 모멸과 투쟁은 이곳, 지금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영화의 배경이 됐던 84년 이후 22년이 지났지만 일하는 여성들은 여전히 일 자체의 무게와 타자의 시선 및 관습, 그 모두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부장적 질서가 전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남은 문제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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