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과 관련하여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19일 파격적인 사회공헌방안을 발표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소유하고 있는 1조 원 상당의 글로비스 주식을 소외계층을 지원하고 불우이웃을 돕는 사회복지재단에 조건 없이 기부하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아울러 현대차그룹의 투명경영을 위해 윤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그룹의 기획총괄본부를 축소하는 한편 국내 일자리 창출과 투자확대 방안 및 중소기업 및 협력사 지원 등의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비스는 정 회장 부자가 60%의 지분을 갖고 있는 현대차그룹 계열의 물류회사로 정의선 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줄로 검찰 수사의 핵심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글로비스 지분의 전량 사회환원이라는 카드는 정 회장 부자의 검찰 수사에 대한 백기투항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20일 정의선 사장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가 있어 더욱 그러한 관측의 설득력이 높다.

그러나 지난 2월 그룹총수에 대한 검찰 수사라는 압박에 몰려 있던 삼성그룹 일가가 사재 8000억 원을 사회에 헌납하겠다고 한 발표를 연상시키는 이번 현대차그룹의 조치를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입장은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현재의 기업이 있기까지 소비자인 국민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사회의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자각과 진정성에서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자발적 행위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과 현대의 사회공헌 결정은 어느 누구도 자발적인 것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두 기업 모두 기업비리와 관련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사재를 턴 거액을 조건 없이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현대차그룹 발표의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이러한 결정이 실현 가능성에 역점을 두었다기보다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포장만 요란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먼저 국내 일자리 창출과 투자확대 방안에 대한 언급은 지난 수년간 경영효율화를 위한 해외 공장 건설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그룹경영 현실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내용이다. 당장 18일 중국 제2공장 착공식이 있었고, 5월 중순에는 미국 조지아주 공장 착공식이 있을 예정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다음으로 투명경영을 표방하며 제시한 사외이사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되는 윤리위원회 설치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투명성이 사외이사나 외부 전문가의 존재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상식에 속한다.

더욱이 기존의 사외이사제도가 오너나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이미 판명되었고, 이는 외부 전문가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현대 그룹이 제시한 방안들은 그 실효성에 있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현대그룹의 대국민 사과에서 언급되었듯이 정몽구 회장이 그동안 기업경영에만 전념하여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사회적 기대와 국민의 뜻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고백이 진심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가끔 지나온 발자취도 돌아보고 주변도 돌아보며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바른 길로 갈 수 있기를 당부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제가 터지고 나서 수습책으로 급조한 대책이 아닌 평소부터 ‘사회와 함께 하는 기업’을 실천해 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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