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서울여성영화제 폐막

김효선(왼쪽) 여성신문 대표가 ‘여성신문상’ 수상자 손현주 감독에게 시상하고 있다.
▲ 김효선(왼쪽) 여성신문 대표가 ‘여성신문상’ 수상자 손현주 감독에게 시상하고 있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지난 6일부터 14일까지 신촌 아트레온 극장에서 열린 제8회 서울여성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총 33개국 96편이 상영된 올해 서울여성영화제엔 3만3000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으며 관객점유율 87%를 기록했다.

6개국 19편이 경쟁을 벌인 ‘아시아단편경선’에선 최우수작을 내지 못하고 우수작에 3편이 선정됐다.  선지연 감독의 ‘그녀의 핵주먹’은 오래된 연인들 간의 갈등을 뮤지컬과 판타지를 혼합한 장르로 코믹하게 풀어낸 작품. 대만 창 나이윈 감독의 ‘별난 엄마’는 직장생활과 집안일, 자신만의 시간을 현명하게 꾸려나가는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그렸고, 이스라엘 달리트 엘리라즈 감독의 ‘라디오 연애상담’은 여성 청취자 대상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주인공을 다룬 영화다.

관객상은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과거를 그린 정다미 감독의 ‘참 잘했어요’가 차지했다.

특별상 부문에서 여성영화공동체 섹션 중 뛰어난 작품에 시상하는 여성신문상엔 손현주 감독의 ‘생리해주세요’와 인도 파로미타 보라 감독의 ‘속도 무제한 페미니즘’이 선정됐다.

여성신문은 이번 영화제부터 여성신문상을 국내 1편과 해외 1편으로 확대, 여성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또한 다큐멘터리 제작을 지원하는 옥랑상 수상작은 여성영상집단 ‘움’의 ‘이반검열 2’가, 눈에 띄는 신인감독에게 주는 이프상은 이애림 감독의 ‘육다골대녀’가 차지했다.

여성신문상 수상자를 만나다

‘생리해주세요’의 손현주 감독

영화 ‘생리해주세요’는… ‘생리해주세요’는 생리에 대한 남녀의 솔직한 생각을 들어보는 길거리 인터뷰로 시작한다. 이들은 남자 선배들에게 생리대를 건네주며 여성들의 불편함을 체험하게 한다. 영화 초반에 이들이 부르는 ‘생리송’처럼 ‘생리해주세요’는 영화 내내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생리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날’의 불편함, 남성도 알아야죠

“대학 졸업작품을 준비 중인데 여성신문에서 주시는 상금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영화 감독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선 느낌이에요.”

국내 부문 수상작인 ‘생리해주세요’의 손현주 감독은 현재 서울예술대학 디지털아트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젊은 영화학도. ‘생리해주세요’는 고3 시절 함께 영화를 공부하던 친구들과 만든 작품이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주최한 청소년 대상 영상작품 사전 제작지원 공모 지원을 위해 여러 가지 주제를 생각하다 생리를 가지고 만들면 어떻겠느냐는 어느 선생님의 권유로 기획하게 됐어요. 거리 인터뷰를 진행한 뒤 사람들의 반응에 당황해 제작진과 다시 회의를 거쳐 방향이 많이 바뀌었죠.”

남자 선배들에게 생리대를 착용하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 처음 의도를 얘기하니 다들 ‘남자의 수치’라며 절대 할 수 없다거나 ‘사각팬티를 입어서 안 된다’는 등 핑계를 대며 거부했단다. 촬영 후에는 어디에 버려야 할지 난감해하며 그냥 주머니에 넣고 집에 간 사람도 있었다고.

“남자 선배들에게 생리대를 권유한 건 여성들의 불편함을 이해하고 배려하겠다는 대답을 듣고 싶어서였죠. 근데 ‘여자들이 얘길 안 하는데 어떻게 알겠느냐’는 반응을 보이더라고요.”

고2때까지 미술을 공부하다 집안 사정으로 포기한 손 감독은 영상에 관심을 갖고 청소년을 위한 영상단체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처음엔 아무 것도 모르고 영화를 시작했으나 고3때 6개월간 ‘생리해주세요’를 준비하며 자신의 진로를 영화로 굳혔다. 이후 대학에서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재혼에 이은 새엄마의 폭력 등 자신의 얘기를 솔직하게 담은 영화를 만들면서 마음이 치료되는 것을 느꼈다. 이후 여성들의 얘기를 영상으로 옮기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졸업작품으로 연극 ‘하녀들’을 영화로 옮기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속도 무제한 페미니즘’의 파로미타 보라 감독

영화 ‘속도 무제한 페미니즘’은… ‘속도 무제한 페미니즘’은 ‘Fearless’라는 대화명을 가진 내레이터가 우연히 컴퓨터 대화방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형식을 통해 ‘우리들의 삶에 있어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페미니스트들의 삶이 바뀌면 우리 시대 페미니즘의 정의도 바꿀 수 있는지 등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다.

한국 여성사회 공감대 형성 기뻐

“여성신문에서 주는 상을 받게 돼서 영광입니다. 무엇보다 다른 문화권에서 내 영화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해외 부문 수상작인 ‘속도 무제한 페미니즘’의 파로미타 보라 감독은 “비행기 스케줄 때문에 시상식에 참여를 못 해서 아쉽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인도 뭄바이 출신의 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인 그는 95년부터 여성 노동자, 여성의 육체와 자아, 전통에 얽매인 여성의 삶 등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왔다.

“많은 여성이 페미니즘의 수혜를 받으면서도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무엇이 우리를 페미니스트로 만드는가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었죠.”

이 영화엔 페미니즘에 대한 아이디어뿐 아니라 개인적인 경험과 성적 농담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컴퓨터 대화방 속 문자와 소리를 통해 유쾌하게 표현된다. 페미니즘이란 정치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심각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대화방이란 소재를 사용했다.

그는 “페미니즘이란 ‘권력에 대한 철학’”이라 표현했다. 정치, 경제, 일상 대화 등 삶의 모든 부분에 존재하는 권력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라고. 또한 “페미니즘은 ‘경계를 넘는 진정한 자유’이며, 그래서 ‘속도 무제한 페미니즘(Unlimited Girls)’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덧붙였다.

파로미타 보라 감독은 “인도는 아직까지 전통문화에서 오는 여성과 계급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나라”라고 표현했다. 현재 준비 중인 다음 영화는 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문’에 관한 영화라고 밝힌 이 작품은 근대화된 도시 델리 안에서 굳게 닫혀진 대문을 사이에 두고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이 나뉘는 상황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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