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혁안 뜯어보니

지난 88년 국민연금 최초 가입 세대인 유모(55)씨는 60세가 되는 2011년(총 가입기간 23년) 월 55만7000원의 연금을 기대하고 있다. 이는 그가 2010년까지 납부하는 총 금액(3085만1805원)의 3.11배(수익률 13.2%)를 가져가는 든든한 투자인 셈이다. 반면 지난해 취업과 동시에 연금에 가입한 김모(25)씨는 65세가 되는 2040년(총 가입기간 36년, 6170만3610원) 월 82만7000원(수익률 9.7%)의 연금을 받게 된다. 그러나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에 따라 소득대체율이 50%로 낮아질 경우 유씨는 기득권이 인정돼 총 3111만4600여 만원을 납부하고 월 52만7000원을 받지만  김씨는 총 8929만8835만원을 납부하고도 월 69만7000원밖에 받지 못하게 된다.

‘덜 내고 나중에 더 받자’며 출발한 국민연금이 ‘더 내고 덜 받아야 한다’며 개혁을 서두르고 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4월 초 올해 안에 국민연금 개혁을 마무리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지난 2004년 12월 국회에 상정, 계류 중인 국민연금법개정법률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 장관은 공무원·군인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개혁도 함께 추진할 뜻을 밝혔다.

현재 적립된 국민연금 기금은 약 160조 원. 이 기금은 2035년 1700조 원이 넘는 거대 펀드가 되겠지만 현 운영방식으로는 2047년 고갈을 면하기 어렵다. 60%의 소득대체율을 적용 받기 위해서는 월평균 소득의 21∼24%의 금액을 납부해야 하지만 현재 보험 요율은 9%(가입자·사업자 각 4.5%)로 결국 기금 적립과 함께 채무도 쌓여가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소득대체율을 2007년까지 55%, 2008년부터 50%로 조정하고, 보험 요율을 현 9%에서 2010년부터 매년 1.38%씩 인상해 2030년에는 15.9%까지 올릴 계획이다.

김용하 순천향대 경제금융보험학부 교수는 “소득대체율을 50%선으로 낮춰도 기금 고갈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연금 수령액을 정부, 현 세대와 미래 세대 등 누가 얼마큼 부담할 것인가 기준부터 마련하고 세대 간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순서”라고 강조했다.

경제·사회복지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입과 지출만 계산해 수지타산 맞추는 데 급급하다며 국민연금이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기 위해선 기초연금제 실시 및 부과식 도입 등 구조 개혁을 외치고 있다. 특히 빈곤·고령화 계층의 주 편입 대상이면서 현 연금수급권에서도 소외되어 있는 여성의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한 시스템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한편 정부는 이번 개혁안에 전업주부가 배우자 사망 시 분할연금을 계속 수급할 수 없었던 조항을 바꿔 재혼하거나 혹은 자신의 노령수급권이 발생해도 배우자의 분할연금을 계속 수급할 수 있도록 바꿔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분명히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여성들도 연금에서 소외되기는 마찬가지다. 여성 근로자의 70%가 비정규직이고 이 중 80%는 국민연금 미가입자라는 현실은 여성들이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보장제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나타낸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결국 1인 1연금과 같은 기초적 안전망(1층)과 소득과 기여에 따른 연금제(2층)의 양층구조로 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1층 구조 설립을 위해서는 세금 등을 통한 재원이 필요한 만큼 사회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1인 1연금 도입을 찬성하는 여성계의 고민 역시 ‘재원’ 부분이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기초연금 외에도 출산·육아 여성에 대한 연금 크레디트 등 다양한 방안에 대한 검토”를 제안했다.

그러나 한 금융전문가는 “국민연금제가 사회보장적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적립식이 아닌 건강보험과 같은 명확한 부과방식으로 완전한 변화를 꾀할 필요도 있다”며 “기초연금제 재원을 세금으로 충당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소득원 파악 등 조세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기초연금제란

1인 1연금 형태의 국민기초연금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생활보장을 위해 연금을 주는 기초연금제는 그동안 연금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여성, 특히 소득이 없는 전업주부들에게도 사회보장의 혜택이 주어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초연금을 실시할 경우 2006년 한 해에만 필요한 재원이 9조3000억 원(순증액 4조8000억 원)으로 재정 부담이 크고, 증세의 경우 결국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또한 맞벌이·홑벌이 가구 간 형평성 문제를 비롯해 65세 이상 연령층 모두가 기초연금 수급 대상자에 포함되어야 하는가 등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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