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부모 없이 외갓집에 얹혀사는 중학생 소녀는 동네 아저씨들에게 몸을 내주고 용돈을 벌며(‘거짓말’), 간병인으로 일하는 중년 여성은 직업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자 환자를 침대 밑으로 떨어뜨린다(‘엘리베이터 타는 여자’). 어릴 적 이모부에게 당한 성폭력의 기억을 간직한 여성은 성인이 된 후 자신의 상처를 어머니에게 고백한다(‘분노를 다스리는 법’).

40대 중반 늦은 나이에 등단한 김우남(49·사진)씨의 첫 소설집 ‘엘리베이터 타는 여자’(실천문학사)에 담긴 8편의 소설에서 저자는 특히 여성의 상처에 관심을 가진다. 쉼터, 정신병동 등에 대한 성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가정폭력, 성폭력 등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당한 여성들의 현실과 아픔을 과장되지 않은 시선으로 그려낸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여성의 삶에만 그치지 않는다. ‘설해목’은 폐쇄된 정신과 병동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의 권력관계와 폭력을 그리고 있으며 ‘파워게임’은 익명의 제보를 받고 국회의원의 비리를 파헤치는 신문 기자 홍기섭의 이야기다.

여덟 편의 소설 속에서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리 밝지 않다. 등장 인물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맞서려 하지만 대부분 권력에 굴복하고 만다. 다만 언니에게 가해진 가정폭력의 실체를 확인하고 대신 형부에게 맞서는 ‘비너스의 꽃바구니’와 상담을 통해 자신의 어린 시절의 상처와 맞서는 ‘분노를 다스리는 법’을 통해 여성들 간의 연대가 희망이 될 수도 있음을 조심스럽게 보여준다. 김우남 지음/ 실천문학사/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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