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숙의 몸, 춤 그리고 사랑타령 (1)

‘당신 몸이 아름답다고?’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저 인간이 드디어 이상해지기 시작하는구나’하며 기가 막혀할 일이다. 사실 내 몸은 어디 내놔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작고 왜소하다. 게다가 확실하게 튀어나온 광대뼈가 얼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으니 분명 흔히들 말하는 예쁜 사람은 아니다.

어렸을 때 난 너무 작고 약해서 거의 발육부진 수준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발레를 하면 키가 커지고 튼튼해진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시킨 것이 내 발레 인생의 시작이었다. 중1의 어린 소녀가 발레리나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열심히 발레를 하면 자신도 공주처럼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발레 레슨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들과 차이가 나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른 애들보다 훨씬 연습을 많이 해도 몸이 못난 내 발레는 남의 눈에 띄지 못했다. 그렇게 늘 못난 몸 때문에 콤플렉스를 갖고 살아온 어린 시절이었다. 그래도 춤을 포기할 수 없어 30대 후반 늦은 나이에 무용학을 공부하겠다고 영국 유학 길에 올랐다.

영국 유학시절 치체스터 대학 무용과 교수로 있는 독일인 친구에게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자신이 ‘아미키’라는 장애우 무용단 공연을 위해서 안무를 하니 연습 때 구경 오라는 것. 장애우가 도대체 어떻게 춤을 출까 너무도 궁금하여 하룻동안 그들과 연습을 함께 하고는 그동안 얼마나 몸과 춤, 아름다움에 대한 편견 속에서 살아왔는지 깨닫게 됐다.

팔이 있는 무용수는 없는 무용수의 팔이 되어주고, 다리가 있는 무용수는 없는 이의 다리가 되어주고, 누워서 꼼짝 못하는 무용수는 다른 무용수들이 그의 팔 다리가 되어주었다. 그야말로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남을 돌봐주기 때문에 드러나는 사랑의 예술이었고 이는 바로 관객에게 감동으로 이어졌다. 장애우들의 움직임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간의 편견들이 참회로 이어졌고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됐다. 이 눈물은 장애우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그들의 몸과 춤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다.

이러한 경험으로 2005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여성학대회 전야제 공연 안무를 맡았을 때 ‘춤추는 허리’라는 장애우 연극팀을 초빙해 발레를 전공하는 제자들과 함께 춤을 추게 했다. 그들의 춤 역시 너무 아름다웠고 발레를 전공한 제자들이 감히 흉내내기도 어려운 경지의 끼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몸과 춤이 아름다운 이유는 비어있기 때문이었다. 이기려고 하지 않고 질 줄 알고, 가지려고만 하는 게 아니라 주고자 하며, 채우려하기보단 비우려 할 때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사랑의 광채였던 것이다.

잘난 몸, 못난 몸의 잣대가 아닌 ‘다른’ 몸을 인식하고 사랑하는 일이 필요하다. 도대체 뭐가 정상이고 잘났고, 또 뭐가 장애고 못난 것이란 말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작고 못나긴 하지만 옹골진 개성이 있는 내 몸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이 순간 내 판타지 속에서 장애우 춤꾼, 나, 발레를 전공하는 제자들이 그리고 모든 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함께 노래하며 춤추는 사랑의 세상이 펼쳐져 보인다. 아 제발 이것이 판타지만이 아니길.

조기숙 /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는 이번 호부터 ‘몸, 춤, 사랑 타령’ 칼럼 연재를 통해 춤을 통한 자아와 몸의 재발견, 치유의 과정을 이야기할 계획이다. 이화여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서레이 대학에서 무용과 발레이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조 교수는 2004년부터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5년 6월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 전야제에서 장애인 무용수와 무용과 학생, 일반인 춤 동호회 회원 등이 참여한 무용극 ‘그녀가 온다’를 공연해 70개국 2000여 명의 참석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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