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은 쌀 관세화 유예협정 비준 동의안의 국회통과와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열리는 홍콩으로까지 가서 농업협상을 저지하려고 무력으로 맞선 농심으로 가뜩이나 추위에 움츠러든 마음이 더 춥기만 하다.
우리는 이미 10년 전 우르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에서 끝까지 쌀시장을 사수하겠다던 공약(公約)이 말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었던 씁쓸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다시금 10년의 유예기간을 갖고 쌀을 개방해야 하는 우리 농민의 허탈함을 문명과 문화를 싹 틔우는 일상의 양식으로 달래보고자 한다.
예로부터 밀의 문화권에 속한 서부유럽은 곡창지대인 폴란드나 우크라이나, 소아시아 지역에서 곡물을 수입해 왔다. 강을 낀 하역지에는 수입해온 곡물들을 저장할 곡물창고들이 즐비하였다 한다. 유럽인의 양식이던 밀은 ‘가난한 자의 만나’로 밀가루, 빵이라는 변형된 과정을 통해 유럽의 역사에 깊이 관여돼 있다.
일찍부터 밀의 교역이 왕성하던 유럽의 정서에서는 일상 양식인 밀의 개방이 갖는 의미가 한국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반면 쌀 문명권·경작권에 해당하는 아시아에서는 밀과는 달리 높은 수확량을 보이는 쌀이 많은 인구를 부양할 수 있어 인구 조밀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그래서 여기서 생산한 쌀은 아시아 쌀문화권 안에서 거의 대부분 소비하여 쌀의 교역은 낯설기만 하다.
이런 한국인의 농심과는 무관하게 도하개발 어젠다(DDA)는 농산물 시장의 전면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에게 또 다시 주어진 10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농촌의 미래가 달려 있다. 42조 원을 투입하고도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 ‘잃어버린 10년’을 탓하고만 있을 여유가 없다. 바로 100년 전에도 교역 자유화로 러시아와 미국의 값싼 농산물이 유럽에 범람하여 많은 농민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의회를 중심으로 보호정책이 대두되어 국수주의적 성향마저 보이며 19세기 중반부터 정착되어가던 자유 교역에 급제동을 걸었다. 100년 후, 역사의 흐름은 어김없이 우리에게도 이와 유사한 국수주의적 움직임을 요구하는 강대국의 압력이 몰려왔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은 ‘신토불이(身土不二)’ 운동조차도 마음놓고 못 하게 하는 강대국이 내민 법조항의 홍수 속에 휘청거리고 있다.
그래도 2006년의 새해가 어김없이 밝아오듯 우리의 그늘진 농심에도 새로운 희망이 자라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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