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의 첫 소설집 ‘소파전쟁’

‘장수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탄식이 흘러나올 만큼 노령화 사회가 성큼 다가온 요즘, 나이 든 부부들의 ‘황혼 이혼’이 늘고 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평생을 각자의 역할에 쫓겨 살았던 부부가 어느 날 집안에 둘만 남아 앞으로 20년 넘는 기간 동안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 부부는 앞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나이 든 부부들이 어떻게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다는 여성학자 박혜란(60)씨가 환갑 나이에 첫 소설집 ‘소파전쟁’(웅진지식하우스)을 출간했다. 자신의 자녀 교육 체험을 담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중년 여성학자의 단상을 담은 ‘나이듦에 대하여’ 등의 에세이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지만 소설은 첫 도전이다. 황혼 이혼, 사별 후 재혼, 노인의 성 문제 등 섣불리 건드리기 힘든 다양한 소재를 독백, 편지, 극본, 엽편소설(콩트) 등 다양한 장르를 이용, 12쌍 부부의 삶 속에 버무려냈다.
“처음부터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생각해 온 소재들을 정리하다 보니 이건 소설 형식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3주 만에 완성했죠.”
나이 든 부부들이 20년 이상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을 ‘인류 역사상 초유의 대 사건’이라 표현한 그는 이번 소설집을 통해 다양한 부부상을 그리며 우리 시대의 결혼 생활이 어떤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언구제러블 맨’은 바람이 나서 평생 딴살림을 살다가 여자가 죽은 뒤 늙은 전처에게 돌아온 남편이 주인공. 그는 싸움 끝에 부인을 죽이고도 ‘독한 여자 잘못 만난 죄로 감옥 가야 되냐?’고 반문한다. 충격적인 내용의 이 이야기는 신문 1면에 났던 부인을 죽인 노인의 기사를 보고 생각해냈단다. ‘변신’은 사별 후의 재혼 문제를 다뤘다. 평생을 시어머니 병구완에 남편과 자식을 돌보느라 희생한 어머니가 세상을 뜬 지 1년도 안 돼서 새장가를 가겠다고 나선 아버지는 앞치마를 두르고 와인 파티를 여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다. 여성들의 수다를 그대로 옮겨 담은 듯한 ‘이브들의 점심식사’는 중년 부부들의 성 문제와 사회에서 바라보는 노년의 성을 중년 여성들의 솔직 대담한 대화를 통해 짚어본다.
그렇지만 이 책이 노부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박씨는 책을 읽은 주변의 젊은 부부들에게서 “나도 지금부터 노년을 준비해야겠다”는 상담을 많이 받았다면서 성공을 자신했다. 그는 행복한 부부가 되기 위해 “노년을 즐기라”고 충고했다. “한 쪽만 노력해서 될 일은 아니죠. 부부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요. 남은 인생을 재미있게 살기 위한 방법을 부부가 함께 찾아봐야죠.”

박혜란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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