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부르주아 성당의 ‘십자가’

프랑스 남부의 아비뇽에서 버스로 한 시간쯤 거리에 나지막한 뤼베롱 언덕이 펼쳐지고 여기서 한 시간을 더 걸어가면 중세적 풍경이 간직된 산간마을 보니으에 도착한다. 이 마을에 최근 ‘루이스 부르주아’ 성당으로 이름을 바꾼 로마네스크식 성당 ‘르 쿠벙 도’가 있다.
프랑스 출신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 93세의 나이에도 열혈 청춘이 부러워할 만큼 내놓는 작품마다 화젯거리를 뿌리는 거장이다. 작은 키와 주름살, 형형한 눈빛은 언뜻 ‘테레사 수녀’를 연상케 하기도 하지만 그 자신은 ‘살아있는 성인’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작품들은 종교적이기는커녕 성적 욕망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평소 ‘신을 믿는가’라는 질문에도 한사코 대답을 꺼리는 인물로 알려진 터라 ‘루이스 부르주아 성당’이란 명칭은 의아함을 자아낸다. 400년 된 이 성당은 혁명기 이후 창고로 버려져 있다가 최근에 한 은행가가 사들여 개축하면서 루이스 부르주아에게 내부 장식을 제안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작업은 유년기의 상처와 뗄 수 없는 상관관계에 있다. 어머니의 눈앞에서 젊은 가정교사와 보란 듯이 관계를 가졌던 아버지의 성적 부도덕에서 비롯된 가족의 상처로부터 그를 구원한 것은 조각이었다. 재고 깎으며 형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두려움을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비례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그의 삶이 바라보는 천국과 지옥. 속죄와 구원의 이미지를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성당에서의 첫 의례는 성유를 찍어 성호를 긋는 일이겠지만, 하지만 루이스 부르주아 성당의 성수대 안에는 살구 빛 젖무덤만이 그득하다. 당혹감과 함께 미끄러져 들어간 손은 성호를 긋는 대신 접촉의 충동으로 변하고 ‘어머니의 젖물로 우리는 정화된다’는 차갑지만 통쾌한 각성으로 이어진다.
그의 대표작인 ‘밀실(Cell)’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철조망 고해소와 분홍빛으로 처연하게 젖을 물리고 있는 누더기 성모상을 지나면 텅 빈 제단의 고요를 지탱하고 있는 긴 십자가를 만나게 된다. 못 박힌 예수도, 피 흘리는 면류관도 없는 그냥 십자가지만 한번 눈길로도 잊을 수 없어서 이 먼 곳까지 찾아 나서게 한 바로 그 십자가이다.
십자가의 가로축은 두 팔의 형상이다. 한 끝은 움켜쥔 손이고 반대편은 열린 손이다. 무엇을 움켜쥐고 있는 걸까. 단말마적 고통? 왜 자신을 버렸느냐는 탄식? 아니면 삶을 향한 한 줌의 집착인가. 그 손이 건너간다. 힘줄이 불거진 팔뚝을 지나 십자대를 건너자 스르륵 손이 열린다. 집착도 분노도 고통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허공과 숨 쉴 공기와 가는 빛이 새어든다. 그리하여 타인을 향해 손 내민다. 이 극단적 모순의 가로지름이 십자가의 길이라는 그녀의 말을 전해들으며 그 앞에 서서 말없이 그가 내민 손을 잡는다. 그것이 나의 기도가 될 것이기에.

제미란 / 미술평론가
미술평론가 제미란씨는 고려대 불문과와 홍익대 서양화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했으며 프랑스 파리 8대학 여성학과 미술전공 박사과정을 수학했다. 앞으로 유럽에서 만난 여성미술가의 작품들을 독특한 감성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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