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정명금 APEC-WLN 조직위원장

“어떤 행사든지 많은 사람이 오고 싶어하는 행사가 돼야 합니다. 그 행사에 안 온 사람은 기본적으로 손해를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그런 행사가 돼야 하지 않겠어요?”
어쨌든 저희 같은 장사꾼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서 손님도 대접하고 행사도 치른다는 것, 알아줘야할 일 아닙니까?(웃음). 회원들도 자신들의 일이라 생각해 금전적인 기여부터 자원봉사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도와주고 있습니다. 덕분에 여경협의 결속력이 크게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가 여경협이 한 단계 도약하는 고무적인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대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여성지도자네트워크회의(APEC-WLN, 이하 WLN) 준비에 여념이 없는 정명금(58·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조직위원장은 은근히 자신감을 내비친다. 그는 지난해 7월 여경협 회장 취임 후 1년여 만에 굵직한 행사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여경협 결속력·브랜드 가치 제고 기회

10월 부산에서의 APEC 정상회담과 9월 APEC 중소기업 장관회의에 앞서 열리는 WLN은 중소기업청으로부터 민간에 위탁된 유일한 APEC 관련 행사다. 비록 지원 예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대회의 성공이 곧 여성경제인협회(여경협) 회원 1300여 명의 자부심과 여경협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직결된다고 생각하기에 정 조직위원장은 미팅에 미팅을 거듭하고 수정과 보완을 계속해 나가며 “최고의 평가를 받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번 대회가 국내 여성 경제인들이 좁은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는 돌파구가 되는 동시에 글로벌 시대 여성 경제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점을 무엇보다 큰 의의로 꼽았다. 부수적으론 한국의 문화와 실질적인 비즈니스가 연계되는 방안을 찾고 싶다. 그래서 자체 슬로건으로 ‘APEC 21개국 여성 기업인들과의 만남, 21년에 한 번 오는 비즈니스 기회!’를 내걸기도 했다. 특히 대회에서 WLN 10주년을 맞이해 기념 세미나가 열리고 APEC펀드의 지원을 받아 소기업 서브그룹회의(MESG)와의 공동 세미나가 진행되는 한편, 여성 장애인 예비창업자 돕기 자선경매 행사와 2005국제여성엑스포가 개최되는 등 대회 주제에 충실한 여러 회의들이 열려 여성기업의 공동 번영에 대한 다채롭고 진지하며 발전적인 논의들이 한껏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여성기업이 하는 행사라고 해서 지원에 둔감한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선 다소 아쉽다.

대기업 무관심 아쉬워…전 일정 손수 챙겨

“사실 국제행사라 예산은 많이 들죠. 그런데도 외부 대기업들의 협찬을 기대하기란 아주 힘들어요. 여성 경제인들이 한다니까 물질적 지원은 별로 필요없다고 생각하는지…여성기업에 대해 대기업들이 지원하는 것이 보편화된 외국이 부럽죠.”
대회를 한 달 여 앞둔 7월 27일 행사 하이라이트인 경북 영주 선비촌 방문을 위해 여경협 전국 지회 운영위원 30여 명과 찜통더위 속에서 하루종일 리허설을 진행했을 때도 그의 진면목은 여실히 드러났다. 얼마 전 팔 부상으로 깁스를 했지만, 종횡무진 열띤 설명을 하는 통에 부상한 팔은 수시로 붕대를 들락날락 했다. 덕분에 손가락들이 새까매지고 통증이 심해져서 의사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차가 이동하는 동안에도 그는 끊임없이 행사장과 행사장 간의 거리와 시간을 체크했다. 사소한 오차가 순간적인 실수로 이어진다며.”
“중기청에서 놀라더군요. 회장은 행사만 주관하고 다른 부대행사들은 다 외주업체에 떼어주게 마련인데 여경협에서 모든 행사를 세심히 다 챙긴다고요. 그동안 여경협은 많은 행사를 주관해 왔기에 충분히 노하우가 갖춰져 있고, 또 모든 행사를 ‘우리 손’으로 해낸다는 각오도 대단합니다. 사업가들이란 규모만 키우고 실질적인 것을 못 챙기는 사람들이 절대 아닙니다. 늘 일정 부분은 스스로 챙겨야 하죠.” 
그는 단체장으로서나 사업가로서나 일관된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농산물 도매업(대구중앙청과 대표이사) 자체가 사람을 많이 다뤄야 하는 사업인데, 기본 원칙 없인 이 사람들을 다룰 수가 없어요. 중도매인들 모두 개개인이 개인사업자이기에 자기 이익에 조금이라도 반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의견이 분분해지죠. 이때야말로 바로 가려는 회사의 원칙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미래 위해 건물 마련·세계협회 가입도
 
그는 회원들이 이젠 우리 단체가 우리 건물을 가질 때가 됐다는 사실을 충분히 납득하고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회장님 뜻대로 해라’ 밀어줬을 때 가장 기뻤다고 한다. 두 달 여를 땅 찾기에 보내고 강남구 역삼동 300여 평의 땅에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최근에 이사했는데, 모든 공사와 내부 장식이 거의 회원 업체들의 기부로 이루어졌다. 그는 무엇보다 단체의 미래를 위해 큰 기틀을 마련했다는 사실에 건물을 드나들 때마다 뿌듯하기 그지없다.
그는 지난해 가을 경주 보문단지에서 400여 회원과 가진 경영연수를 잊지 못한다. 회장이 된 후 처음으로 단체의 저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밤 12시가 다 돼 가는데도 회원 중 어느 한 명도 자리를 뜨는 이 없이 열기가 확실했어요. 외부 공연진을 초청하지 않고 회원들 간에 상금을 걸고 첫 장기자랑을 시도했는데, 정말 놀랐어요. 그토록 많은 장기가 나오다니…회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승부욕이 정말 대단하더군요. 그래서 생각했죠. 저러니 남의 돈 빼내 주머니에 넣는구나, 기업을 하는구나라고요. 우리 여경협 회원들, 뭉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겁니다.” 
회장으로서 그는 이런 회원들의 잠재력을 어떻게든 세계로, 세계로 틔워주고 싶다. 그래서 회장이 되자마자 지난해 ‘세계여성경제인협회’에 가입했다. 세계여성경제인협회에선 유럽과 미국 중심 구도에서 아시아권 여성 기업인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통로로서 한국의 여성 경제인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한다. 안으로는 여성 기업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인간관계와 마케팅 부문을 보완, 훈련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실시하고 싶다.

여성기업인 투자가치 충분 종합지원시스템 필요

“남성 기업인들에 비해 정보나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여성 기업인들의 경우, 창업 초기부터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때까지 종합적 지원이 가능한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 등의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케팅이나 판로를 지원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도 절실하죠. 그래도 투자할 가치는 있습니다. 여성기업의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으로 성장한 뒤엔 스스로 안정적인 경영을 한다는 실태조사 결과도 나왔거든요. 그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기업 스스로의 노력입니다.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세계적이면서도 동시에 한국적인 우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투자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한국의 여성 경제인들이 안팎으로 성찰의 눈을 뜨는 전기를 맞을 수 있도록 대회장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마냥 바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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