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TV 통한 인물묘사 신중해야

붉은 악마의 물결치는 레드 퍼레이드가 빨갱이라는 말에 대한 뿌리깊은 이미지를 순식간에 바꿔놓았듯이, 나는 요즘 한국 개봉 영화들을 보면서 북한 인민군에 대한 시각적 체험을 완전히 새로 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JSA’의 송강호와 신하균을 통해 인간미 넘치고 의리가 있는 캐릭터로 변신하더니, 올해 하반기 개봉작인 ‘천군’의 김승우는 세련된 장교로 나오고, ‘웰컴 투 동막골’의 정재영과 임하룡에 이르면 한없이 따뜻하고 정감 어린 사람으로 다가온다. 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 인민군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 싶은 느낌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인민군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그릇된 이미지의 잔재로 갖고 있었던가를 돌아보게 된다.
그만큼 시각적 체험은 의식 너머의 깊은 곳에 그대로 남아서 나를 지배한다. 이 점에서 스크린이나 TV를 통해 전달되는 인물의 캐릭터는, 특히 시대적 배경과 직접 결부되어 묘사되는 경우라면,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을 위해서라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문제의식에서 볼 때 KBS TV의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비롯한 일본 장수들의 캐릭터 설정이 마음에 걸린다. 물론 독도 문제나 역사 교과서 왜곡 등 일본은 여전히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 실제로 ‘불멸의 이순신’ 시청률이 급상승했을 때가 독도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되고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통쾌하게 물리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했다는 점에서, 아마 작가나 제작진도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불멸의 이순신’을 본 아이들은 아마 내가 ‘전우’나 ‘똘이장군’을 통해 인민군을 포악하고 야비한 인간으로 믿어버렸듯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일본 장군들을 전부 그런 성격의 소유자로 믿게 되지 않을까 싶다. 잘못하는 일본을 제대로 비판해야 하고, 임진왜란과 왜군이 저지른 만행을 똑똑히 기억해야 하지만, 동시에 당시의 일본 장군들이 갖는 인물 캐릭터에 대해서는 비록 적군이나 그 인간 됨됨이와 지도자의 자질 면에서 균형 잡힌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허구와 재미가 본성인 영화이고 드라마지만, 그 시각적 체험은 다음 시대를 이끌고 갈 세대의 이미지 원형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역사를 다루는 경우에 한해서라도 인물 캐릭터에 좀 더 신중하고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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