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 -‘여성 철학자’

철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니체 등의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여성 철학자는 고작해야 시몬 드 보부아르 정도이다. 서양철학이 탄생한 고대 그리스 이후 2500여 년 동안 여성 철학자는 과연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최근 출간된 ‘여성 철학자’에서 마리트 룰만을 비롯한 8명의 저자는 철학사의 뒤편에 머물러 있던 여성 철학자들을 페미니즘 시각에서 복원했다. 고대 그리스의 테아노, 아스파시아로부터 한나 아렌트, 줄리아 크리스테바, 로자 룩셈부르트 등 20세기의 인물까지 85명의 여성 철학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삶과 사상을 보여준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 여성들은 교육 과정에서 철저하게 배제돼 주부와 어머니로서의 교육만 받았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고대 그리스 사회에는 60∼120명의 여성 철학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놀라움을 안겨준다.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식 대화법’도 아스파시아(BC 460∼401경)라는 여성에게서 비롯됐다.

유명 정치가인 페리클레스의 부인이던 그가 연 살롱에는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나 극작가 소포클레스 등 당대 문화·예술인들로 가득했다. 아스파시아에게서 웅변술을 배운 소크라테스는 그를 “최고의 변증법과 수사학의 여교사”로 칭송했다.

여성에 대한 탄압이 특히 심했던 중세시대, 기독교 철학의 전성기에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수도원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빙겐의 힐데가르트(1098∼1179)는 수도원장이었으며 과학, 의학, 작곡에도 뛰어난 소질을 보였다. 독일 신비주의의 창시자였던 그의 작업들은 축소되거나 은폐돼 일부만이 전해지고 있다.

19세기 말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을 정면으로 반박한 여성 중 카렌 호니(1885∼1952)가 있다. 호니는 “소위 ‘남근에 대한 두려움’은 여성의 본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주어진 역할에 대한 불만족에서 나온다”고 주장해 프로이트에 맞섰다.

20세기 전반기는 논리 실증주의, 실존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등 다양한 사조가 범람하던 시기였다. 한나 아렌트(1906∼75)는 그때까지 어떤 철학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살아야 할 운명’이라는 개념을 철학에 끌어들여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구축했다.

20세기 후반 페미니즘이 유행하면서 비로소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이때가 돼서야 비로소 전통적인 철학사에서 외면 당했던 여성 철학자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 아드리아나 카바레로의 ‘플라톤에 맞서다’(92), 우르술라 피아 야우호의 ‘성차에 관한 이마누엘 칸트의 견해’(89) 등의 책이 발표됐다.

마리트 룰만 외 지음/이한우 옮김/푸른숲/3만2000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