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역고소' 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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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는 명예훼손 아니다” 대구여성의전화 '손' 들어줘

피해자·지원단체 힘실려…여성계 대환영

성폭력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했다 하더라도 공익을 위한 취지라면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이는 최근 증가하고 있는 성폭력 가해자에 의한 명예훼손 역고소 사건에 대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로, 성폭력 피해자 및 지원단체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4월 29일 대법원은 2001년 성폭력 가해자 K, L씨가 김혜순, 이두옥 대구여성의전화 전 공동대표를 사이버명예훼손죄로 고소, 항소심에서 벌금 각 100만 원을 선고했던 사건에 대해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대구지법으로) 환송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담당 변호사였던 이춘희 변호사는 “대구지법의 판결이 남아 있지만 대법원과 다른 판결이 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전망했다.

당시 지역 K교수의 조교 성폭행 사건과 L교수의 여제자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들을 지원했던 대구여성의전화는 사건 상황과 가해자 실명을 인터넷과 회지에 공개했고, 가해자들이 이를 문제삼아 공동대표 2명을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했었다.

김혜순, 이두옥씨는 2002년 1심에서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돼 벌금 각 200만 원, 2003년 항소심에서 각 100만 원을 선고받았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들의 실명 공개는 학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조사와 처벌, 학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를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

다만 K교수에 대해 '술에 마취약을 넣어 성폭행했다' '상습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게재한 부분은 '허위사실'이라며 유죄를 판결했다.

이에 대해 이춘희 변호사는 “수사권한이 없는 지원단체가 피해자를 지원할 때는 주로 피해자의 진술을 듣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지원단체의 현실을 보다 고려하지 못한 해석”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여성계는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명예훼손 역고소 공동대책위원회 대구여성의전화 특별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의 실명 공개는 피해자의 인권을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성폭력 범죄사실의 사회적 공표를 통해 재발방지 및 예방효과를 갖는다”고 실명공개의 의의를 강조했다.

이두옥 대구여성의전화 대표는 환영의 뜻을 보이면서 “성폭력으로 이미 '명예'를 잃은 가해자가 명예훼손으로 역고소할 수 없게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혜순 대구여성의전화 전 공동대표(계명대 교수)는 “역고소 사건을 가정폭력·성폭력 예방을 위한 호기로 삼아 명예훼손 역고소 반대 서명운동, 1인 시위 등을 펼쳐왔다”며 대법원의 판결에 의미를 부여했다.

임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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