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의미 복원 과정 알기쉽게 정리...100% 아닌 광교 수표교만 살려 아쉬움

~a3-3.jpg

"청계천 위를 덮었던 콘크리트 고가도로는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개발 시대를 상징합니다. 지난 3년간 고가도로를 헐어내고 청계천을 복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생태 환경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환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발간된 청계천의 역사적 의미와 복원 과정을 정리한 책 '청계천에서 역사와 정치를 본다'(여성신문)가 출판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저자는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상임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광권(58) 박사다.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조 박사는 73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23년간 행정관료로 일했다. 조순 시장 시절 서울시 보사환경 국장, 교통국장, 공보관 등을 역임했으며 교통카드제, 남산혼잡통행료제 등 주요 시책을 시행했다. 현재 서울시 교통연수원장 겸 서울시립대 도시행정과 도시과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청계천에서…'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조 박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받은 박사학위 논문 '조선왕조 준천 과정에 나타난 위민담론 분석'을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시 정리해 발행한 것이다. 그는 청계천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인물로 세종과 영조를 꼽았다. 세종은 청계천을 깨끗하게 가꿔야 백성이 잘 살 수 있다는 풍수학자의 건의에도 불구하고 풍수는 미신이라 주장하는 유학자들의 반대에 밀려 청계천을 방치했다. 그러나 영조는 홍수 때마다 넘치는 청계천을 두고 볼 수 없어 반대에도 불구하고 준천(하천이나 해안의 바닥에 쌓인 흙이나 암석 따위를 쳐내어 바닥을 깊게 하는 일)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백성의 생계에 피해를 주지 않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a3-4.jpg

"조선 초기의 준천은 주로 조정 내부의 의견만 수렴했고 백성들을 일방적으로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후기에는 공사에 동원한 백성들에게 노동 대가를 지불하고 절차 규정까지 마련하는 등 민중에 대해 변화한 의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대목을 설명하면서 조 박사는 서양에서 민주주의가 수입되기 이전인 조선왕조시대에도 민권 의식의 싹이 자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선왕조의 민본정치사상과 민주주의 정치사상이 상호 보완된다면 우리사회 민주주의는 한층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계천 복원과 관련, 조 박사에게 가장 아쉬운 점은 역사 유적이 100% 복원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광교와 수표교가 복원되는 것으로 위로를 삼았다고.

조 박사는 "청계천 주변 개발은 시민들의 의식수준에 맞게 개발될 것"이라며 "사회 여론을 주도하는 책임 있는 지식인들이 청계천 복원 사업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임현선 기자 sun5@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