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기혼 여성총장·첫 여성 국무총리 지명으로 여성역사에 이정표

여성능력과 자신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 “난 타고난 여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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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년 퇴임한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의 요즘 화두는 28년 교수생활 동안 이화에 바쳤던 열정과 에너지를 어떻게 사회와 여성들에게 환원할지이다.

누군가 말했던가, “사랑하였기에 행복하였노라”라고. 퇴임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지만, 자택에서 만난, 이화에서의 28년을 반추하는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에게 이 말 만큼 잘 들어맞는 표현도 없으리라. 그런데 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4시간 내내 이화만 생각했던 마음을 이젠 세상 속에 풀어놓겠”단다. “남은 열정으로 자긍심 있는 사회로 가는 데 마음과 에너지를 쏟고 싶다”는 것. 이는 그 자신도 인정하듯 “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여성 전체에 (싫든 좋든) 어떤 물꼬를 튼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가지고 있는 책임감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특정 대학 총장을 넘어 우리 여성들에게 각별한 존재다. 96년 이화여대 첫 기혼 총장, 2002년 7월 헌정사상 첫 여성 국무총리 지명자란 '문'을 연 사람이기 때문이다. 3년 전 여름 국무총리 지명에 따른 국회 인사청문회를 정점으로 그에게 쏟아졌던 온갖 부당한 비난과 편견, 이후의 낙마는 그 스스로 말하듯 “마치 돌풍을 만난 기분이었고, 일단 돌풍을 만나면 도리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던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이후 그는 국내외를 뒤흔들었던 그 돌풍에서 살아남았고 자신의 퇴임 기념예배에 청문회에서 그를 몰아붙였던 국회의원들 모두에게 진심 어린 초청장을 보낼 정도로 스스로를 치유했다.

“(비난이) 사실과 너무 다르면 상처를 받긴 하겠지만, 오히려 흔들리지 않고 초연해진다는 것을 체험했죠. 진정한 힘은 확신에서 나오고, 그 일차적 확신은 바로 자신에 대한 신뢰입니다.

국회 인준 부결 후 DJ와 이희호 여사와의 청와대 식사에서 DJ가 “헌정사상 첫 여성총리가 여성들에게 얼마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인지를 다들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답답한 속내를 토로하긴 했지만, 그는 여성신문사를 주축으로 여성계 인사들이 모였던 '최초 여성총리 지명의 의미를 나누는 여성모임'과 일련의 여성연대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2003년 5월 자전 에세이 '지금도 나는 꿈을 꾼다' 출판기념회장과 2005년 3월 정년퇴임 감사예배장을 가득 메운 축하객들, 그리고 다투어 이를 다룬 주요 언론들의 긍정적 보도 행위, 이 모든 것이 뒤늦게나마 그의 결백을 방증하는 국민 여론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모교인 프린스턴대와 예일대에선 청문회에서 오해받았던 학력위조(?) 누명을 벗겨주려는 듯이 앞다퉈 '탁월한 동문인상'을 그에게 수여해왔다.

“어쨌든 나로 인해 이정표는 분명히 섰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잡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것과, 여성도 국무총리가 될 수 있나란 의문은 이미 넘어섰죠.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예 여성 대통령 탄생 여부가 화두잖아요(웃음)”

58년 대학 시절 이화YWCA 회장으로 전교생 4000명 중 1000명을 Y회원화할 정도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그는 스스로를 “타고난 여권주의자”라고 서슴없이 정의한다. 여성에게 잠재돼 있는 능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

88년 '여성신문' 창간 때 당시로선 거금이랄 수 있는 50만원을 내고 창간주주로 참여했던 장상 전 총장은 “'여성신문'은 태생 때부터 역사적 소명을 가지고 있었으니, 시대 변화에 맞게 소명을 다하면서 지평을 넓혀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가 보는 차세대 여성들의 비전은 과연 무엇일까.

“여성들의 탁월한 점은 수평적·민주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거예요. 여기에다 상대적으로 남성들보다 고지식하고 도덕성이 강해 사회진출이 늘어날수록 한국 사회 투명성에 기여할 것이란 점입니다. 여성들이 힘을 모아 단계적 전략으로 결국 호주제를 폐지시켰듯이 이제는 여성들의 육아 고민을 적극 풀어갈 때입니다. 우리 사회가 여성을 메인 스트림(main stream)으로 인정한다면, 저출산 고령화 위기를 풀어나가고 싶다면, 또 국가가 육아문제를 전적으로 맡아 출산율도 높이고 양질의 여성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곧 역사를 바꾸는 작업이죠”

글=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사진=이기태 기자 lee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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