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 불구 정신지체 여성 업소로 돌려보내

창문까지 봉쇄…유족들 부실 수사 거센 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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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여성위원회 미아리 성매매업소 집결지 화재사건 진상조사단이 3월 30일 오후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화재사고 희생자 유가족 및 여성단체들로 구성된 '미아리 성매매집결지 화재참사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김미령)'의 현장 활동가 김현선(오른쪽 첫번째)씨의 의견을 듣고 있다. <이기태 기자 leephoto@>

3월 27일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집결지(속칭 미아리텍사스촌)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는 성매매방지법을 비웃는 사건이었다. 이 사고로 20대 성매매 피해 여성 5명이 목숨을 잃었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특히 중상을 입은 송모(30)씨가 정신지체 3급 여성인 것이 알려지면서 경찰의 부실 수사와 단속을 비롯해 성매매방지법의 실효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성매매방지법 실효성 도마 위

경찰은 3월20일, 25일, 26일 모두 3차례 문자메시지를 통해 “내 동생이 감금돼 있다”“OO업소에서 윤락행위가 벌어지고 있다”“OOO가 OO업소에 있으니 주인 몰래 도와달라”는 신고를 접수했다. 경찰은 사건 전날인 3월 26일 송씨와 같은 업소에 있었던 성매매 피해 여성 9명, 업주, 마담 등을 조사했으나 업주를 불구속 입건한 채 돌려보냈다. 경찰은 송씨를 조사하던 중 “장애가 있는 것을 몰랐다”는 이유로 송씨의 성매매를 방치했다. 3월 30일 현재 사건의 수사권은 관할 경찰서인 종암경찰서에서 서울경찰청으로 넘어간 상태이며 업주 고모씨는 구속됐다.

화재 현장을 둘러본 유가족과 여성단체 관계자, 국회의원들은 한결같이 “감금상태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에 공감을 표시한다.

언론에 공개된 화재현장은 시신이 발견된 3층과 4층의 경우 3층은 방 3개 가운데 2개에는 아예 창문이 없고, 방 1개의 창문은 벽걸이형 에어컨으로 인해 출입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시신 2구가 발견된 4층마저 큰방은 창문이 합판으로 막혀 밖으로 전혀 나갈 수 없는 구조였다. 옥상으로 통하는 4층 베란다에는 물건이 쌓여 있어 베란다 가장자리의 옥상으로 가는 사다리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여성부의 한 관계자는 건물의 4층은 불법용도로 변경된 공간이기 때문에 이를 직무유기한 관할 관청인 성북구청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배숙 홍미영 열린우리당 의원, 김애실 진수희 한나라당 의원과 단체 관계자들은 3월 28일 사고 현장을 둘러 본 뒤 “말로만 감금이란 표현을 안 썼을 뿐 실제 감금이나 다름없다”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3월 30일 국회 여성위 소속 진상조사단으로 현장을 방문한 이경숙 열린우리당 의원, 이계경 박세환 한나라당 의원,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 손봉숙 민주당 의원도 이에 의견이 일치했다.

“경찰만 의존하면 진실 못 밝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등 성매매 여성 지원 단체들은 화재 발생 직후 '미아리화재참사공동대책위'(공대위)를 구성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대위에서 활동하는 김현선 새움터 대표는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모든 일을 제치고 현장으로 뛰어간다”며 “경찰의 수사에만 의존한다면 진실을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김 대표는 사고 현장을 둘러본 결과 “사고가 난 건물의 2층과 3층을 연결하는 계단에서 철문 2개와 유리문 1개, 잠금 장치를 확인했다 ”며 “기존 이 지역에서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일대 업소들은 대부분 숙소인 3층에서 영업 공간인 2층으로 내려올 경우 문을 열면 큰 소리가 나는 장치가 설치돼 있어 24시간 감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소리가 나면 '현관 이모'라 불리는 사람에 의해 제지당하게 되므로 실질적으로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장애인인지 몰랐다” 변명에 분통

공대위는 화재가 일어나기 전날 경찰이 신고가 접수된 정신지체장애인 송씨를 업소로 돌려 보낸 점과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19범인 업주를 불구속 입건한 점을 예로 들어 경찰의 수사 의지에 심한 불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장애인에게 성매매를 강요할 경우 인신매매범으로 간주해 형을 무겁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종암경찰서 관계자는 “이 지역에서 만난 성매매 여성들이 대부분 어눌하고 말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송씨를 보면서 장애인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송씨 가족은 “10분만 대화를 해보면 (송씨가) 정상이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며 경찰의 군색한 변명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단체 관계자에 따르면 송씨의 부모는 6개월째 송씨를 찾아 미아리 쪽을 배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화재 발생 당시, 화재 원인을 희생자 탓으로 돌려 유가족들과 단체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경찰은 “여성들이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다가 불이 났다”고 발표했고 언론들은 그 발표를 그대로 인용해 기사화했다.

공대위 측은 “성매매 업소들은 대부분 불법으로 건물을 개조해 내부 구조가 취약하고 전기배선이 엉망이어서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며 “이번 화재 원인도 누전으로 의심된다”고 밝혔다.

단속 비웃는 불법영업 여전

김미령 공대위 위원장은 “미아리 집결지만 해도 들어오는 입구가 20여 곳이 되지만 경찰은 단 한 곳에 두 명이 배치돼 있는 실정”이라며 “경찰의 성매매 단속이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업주에 대한 처벌이 미약해 경찰의 단속과 법망을 피해 성매매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단체 활동가는 “감금, 강요의 정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증거불충분으로 불구속 기소판정을 내리는 관행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에는 업소 130개, 성매매 여성 455명이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임현선 기자 sun5@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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