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 박정희'논쟁 자체가 브랜드 가치 높여

무시의 감수성으로 박정희시대 극복할 때

정부의 잇따른 과거사 비밀 문서 공개, MBC TV 드라마 '영웅시대'의 조기 종영,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의 법정 논쟁, 광화문 현판 교체 시비 등 2005년 새해를 맞은 한국 사회는 온통 박정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26년 전에 무덤에 들어간 박정희와 그의 시대가 정권이 다섯 차례나 바뀐 지금 뜨거운 화두로 부상한 이유를 두고 말들이 많다.

분명한 점은 '박정희 살리기'와 '박정희 때리기'의 양자 대결처럼 보이는 현재의 이야기 방식은 박정희의 브랜드 가치를 더욱 높인다는 사실이다. 그를 둘러싼 열광의 박수와 증오의 손가락질은 양쪽 모두 미디어 상업주의의 만만한 플랑크톤에 불과하다. 그 결과 우리는 좋든 싫든 '망자 박정희'를 되살렸고 '박정희 신화'에 대해 시시콜콜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박정희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박정희에 대한 찬반 담론의 전개 방식에 좀 다른 샛길들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첨예한 대립 구도로 몰아가는 찬양과 경멸의 양 편은 실상 한 통속이기 때문이다. 박정희를 비판적으로 평가했고 그와 그의 시대를 넘어서고자 한다면 이제는 박정희 독재 정권을 향해 돌을 던지던 과거의 전략과는 달라져야 한다.

2005년 한국 사회에서 '박정희 극복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면, 그것은 그에 대해 거품을 물고 눈을 부릅뜨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의 좌우로 갈라지는 양편에서 조금은 한가한 척 벗어나서, 박정희에 대해 웃어버리고 박정희를 무시하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이런 정서는 박정희를 신봉했거나 타도하려고 자기 생의 중요한 시간을 보냈던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다.

설령 '박정희 복권'을 준다 해도 무시하고 돌아서서 금세 잊어버릴 수 있는 이들은 내가 보기엔 박정희 사후에 태어난 세대다. 고령화 추세와 저출산 풍조가 변수이긴 하나 자신의 삶에서 박정희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인구는 앞으로 더 늘어난다. 이들에게 필요한 학습은 침이 튀는 찬반 토론이나 끝장 토론이 아니라 5분 안에 끝날 수 있는 농담과 웃음이다.

중학생 여자 아이 둘이서 “야, 근혜 언니 넘 예쁘지!” 하며 미디어 이미지에 반하면서도 “남편이 박정희라며?”라고 진지해지는 식의 엉뚱한 대화에서 나는 무지를 탓하기보다는 차라리 안도의 한숨을 쉰다. 보수와 진보 양편에서 다시 한번 왕년의 박정희로 먹고살려고 작심한 듯 보이는 무게 잡는 역사 논쟁의 효능을 믿지 않는 나로서는 5분간 가볍게 농담 따먹고 까먹으면 그뿐인 '웃기는 박정희'나 '썰렁한 박정희'를 소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피해 당사자들의 울분과 역사학자의 사명은 다르겠지만, 그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명한 정치인이나 양심 있는 미디어 종사자라면 당대와 후세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박정희를 '문제적 인물'로 심각하게 덧칠하는 일 만큼은 그만두어야 한다. 박정희는 무덤에 들어간 한 명으로 족하다.

김종휘/문화평론가·하자작업장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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