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오늘도 구르는 중』출간한 유튜버 '구르님'
휠체어 꾸미기 프로젝트 하다가
자신의 유년기 때와 똑같은 경험과 고민하는 아이들 만나
"어린 시절의 저한테 너무 필요했던 책"
"어린이·여성 독자들이 이 책 읽고 마음이 가벼워지길"

어린이책 『오늘도 구르는 중』의 저자 김지우 작가가 책을 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다인 기자
어린이책 『오늘도 구르는 중』의 저자 김지우 작가가 책을 들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다인 기자

“누구는 주근깨가 있고 누구는 안경을 쓰고 누구는 보청기를 끼지. 100명의 아이가 있다면 100개의 세상이 있는 거야.”

어린이책 『오늘도 구르는 중』의 한 대목이다.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하는 유튜버 김지우씨가 작가로 돌아왔다. 스스로를 “필요에 움직이는 창작자”라고 표현한 그는 휠체어 위에 앉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이 책 써야 할 '필요'를 느꼈다.

김지우 작가는 지난 2022년 휠체어를 타는 아동 6명과 같이 휠체어 꾸미기 프로젝트 ‘휠체어 위의 우리들’을 진행하며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을 만났다. 대화를 나누다 그는 아이들이 자신의 유년기 때와 똑같은 경험과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주위 아이들이 휠체어를 신기하게 바라보거나 엄마에게 왜 나는 못 뛰냐고 물어보고. 휠체어 타는 걸 숨기는 일 등 다 제가 했던 경험들이다. 그때 필요했던 게 뭐였는지 지금은 안다. ”

서울 관악구 한 카페에서 김지우 작가를 만났다. 그가 탄 전동휠체어가 카페 책상에 부딪혔다. 곧 능숙하게 휠체어 높이를 조정했다.

 “새로 바꾼지 얼마 안 돼서 그래요.”

휠체어는 그의 정체성 중 하나다. 그는 고등학생 때부터 휠체어를 탄 여성 장애인의 일상을 주제로 한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채널에서 ‘휠체어 타는 여자의 월경용품 고군분투’, ‘장애여성은 어떻게 연애를 할까’, ‘장애있는 언니들이 알려주는 생리 이야기’ 같은 톡톡 튀는 영상을 통해 ‘장애여성’의 삶을 가시화했다. 김지우 작가는 여성 장애인의 존재를 드러내고 사회에 영감줬다는 평을 받으며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올해의 보이스’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늘도 구르는 중/김지우 지음/이해정 그림. ⓒ풀빛
오늘도 구르는 중/김지우 지음/이해정 그림. ⓒ풀빛

- 아이들이 다름을 편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썼다는 게 느껴졌다. 작가님에게는 그런 어른이나 멋진 선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사실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건, 입원생활했을 때 만난 언니오빠들이다. 소아병동은 연대의 장소였다. 엄마에게도 특별한 공간이었다. 엄마는 비장애인인데, 딸은 장애인이니까. 그동안 갖고 있던 불안들이 병동에 들어오고 나서 괜찮아졌다고 한다. 청소년 장애인들도 있구나, 우리 지우도 저렇게 크겠구나. 아무것도 안 보이는 암흑상태였다가 병동에 들어오고 나서 오히려 안심됐다고 했다.

- 책에 나오는 ‘휠체어를 탄 사람을 특이한 사람으로 만드는 건 바로 우리 사회예요’라는 문장이 와 닿았다.

이 문장은 장애학에서 오래된 말이다. 190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장애는 ‘손상’으로 정의됐다. 장애는 개인의 책임이고 치료돼서 정상으로 편입되는 게 서로한테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장애의 사회적 모델 등장했다.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을 할 수 없고 장애인들이 집 안에만 있는 게 장애 때문이냐 아니면 이동할 때 버스가 없고 지하철이 없어서냐고 묻기 시작했다.

사실 장애는 최근 개념이다. 조선시대만 봐도 그렇다. 세종대왕도 시각장애가 있었다. 정1품 벼슬에 오른 장애인도 있었다. 장애는 그 사람들의 특징으로 받아들여졌다. 일제강점기로 근대화가 시작되며 노동이 중요해지며 부정적인 의미로 장애라는 개념이 생겼다고 한다.

- 책의 주인공 ‘나’를 여성으로 설정했다.

장애여성이 갖는 교차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상한 몸’이라는 책을 읽었다. 서론에 ‘장애-여성’이 갖는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선명한, 내 이야기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어떤 창작물을 봐도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다. 페미니즘 리부트(reboot·재시동) 이후 ‘디폴트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강인하고, 머리도 짧고, 돈도 많은 여성. 하지만 제 옆에는 아픈 여성들이 많았다.

장애 쪽을 봐도, 협회장 이런 사람들은 엘리트에 남성인 척수 장애인들이다. 장애 안에서도 주류가 있다. 비장애인에게는 다 장애인 덩어리겠지만, 장애 안에도 다양한 장애인이 있다. 노인도 있고, 어린이도 있고, 여성도 있다. 노인이면서 여성일 수도 있다. 그런 이야기가 너무 안 되고 있어서, 교차성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신다인 기자
김지우 작가가 책에서 좋아하는 부분을 설명하고 있다. ⓒ신다인 기자

- 책에 나오듯 장애인이 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일상에서 결정 장애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사람을 좀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요즘은 많이 한다. 사실 한 명만 ‘그게 재밌어?’하고 물어봐도 그런 문화가 사라진다. 하지만 틀렸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지적하는 게 힘들다면, 좋은 걸 좋다고 많이 말하면 좋겠다.

전장연 시위가 한창 뜨거운 감자일 때 학교 에브리타임(대학생활 플랫폼 서비스)에도 장애 혐오가 넘쳤다. 장애인 전체를 싸잡아서 욕하는 글이 올라왔다. 댓글들도 이를 동조하고 있었다. 하루는 너무 화가 나서, ‘나는 항상 휠체어 타고 지하철 타는 사람인데, 이게 재밌냐’고 댓글을 달았다. 그 밑에 욕이 달렸지만, 제 댓글에 대한 좋아요 수가 그 게시글의 좋아요 수를 훨씬 넘었다. 사람들이 답글은 못 달아도, 혐오에 공감하지 않는다고 표시한다. 거기서 믿음이 생긴다. 말을 안 할 뿐이지 혐오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

- 책에 화재대피 훈련 때 혼자 남아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재난 시 엘리베이터는 멈추고, 계단을 이용해 탈출하라고 교육받는다. 실제 휠체어 장애인은 어떻게 대피하나.

고3때 12년 동안 한 번도 안전교육 때 대피해 본 적이 없다고 영상을 올린 적이 있다. 그때 담임 선생님이 그 영상을 보고 사과한 적이 있었다. 영상이후 소방청에서 장애인 대피 매뉴얼이 있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사실 그게 누굴 지목해서 업고 내려가는 정도다.

제가 프랑스에 갔을 때 지하철에 휠체어 표시와 함께 불 표시가 있었다. 걸을 수 있는 사람은 불이 났을 때 계단을 사용해서 올라가고, 계단 이용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위해 수평 대피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불을 차단할 수 있는 방화벽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호주에 있을 때도 그런 수평대피 공간들이 보였다.

- 책 말미에 유튜버가 된다면, 세상 여러 곳을 다니는 여행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썼다. 어렸을 때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나.

어렸을 때는 걸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장애라는 게 낫지 않고, 계속 휠체어 타야 한다는 걸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충격이었다. 선생님들도 저를 걷게 하려고 엄청 노력을 했고, 그러니까 오히려 걷는다는 게 ‘정상’이라고 계속 생각했던 것 같다.

딱 한 선생님께서 너는 안 걷는 게 낫다고 말했다. “너는 어른이 되면 더 몸이 커질 거고, 무거워지면 관절에 무리가 되고 부상도 심해질 거야. 결국에는 휠체어를 타게 될 거야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저한테 욕을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런 말을 해줄 어른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른 어린이들에게도 휠체어를 탄 채로 어른이 돼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어린이 독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싶다. 특히 여자 독자들에게 실제로 많이 가닿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의 저한테 너무 필요했던 책이었다. 그 당시에 이런 책을 만나지 못했지만, 어린이 독자들이 이 책으로 인해서 마음이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장애인들이 어디서도 내 이야기를 발견하기 어렵다. “맞아맞아” 하고 마음 놓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반가운 책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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