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경 /

<뉴스위크>한국판 편집장

21세기 제3의 길은아메리칸 드림도 유러피언 드림도 아닌코리안 드림이다

6·25전쟁 이후 폐허가 된 한반도에서 미군의 구호물품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토종음식 이외에는 구경도 못하던 한국인들이 밀가루나 통조림과 만나게 된 계기도 거기서 시작됐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그 흔적처럼 미국은 우리에게 뿌리 깊은 열등감을 심어줬다. 뒤늦게 시작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고통의 세월을 겪어오며 어느새 '절대 선'이 돼버린 미국적인 가치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한없이 자책하기도 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온 가족의 손을 잡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 중 일부는 꿈을 이뤘지만 대부분은 미국에서 그러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세탁소를 운영해서 아이들이라도 아이비리그로 보내는 것이 최대의 소망인 그런 삶 말이다.

미국은 과연 우리가 꿈속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그런 나라일까. 그렇지 않다는 보고서가 출간돼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미 콜로라도 출신의 사회학자인 제레미 리프킨이 쓴 '유러피언 드림'이다. 이 책의 핵심은 아메리칸 드림의 시대는 가고 유러피언 드림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리프킨의 시각은 이 책 속에 동원된 각종 지표와 자료로 충분히 타당성을 갖는다. 세계적인 부자의 32%가 유럽에 살고 있고, 미 '포천'지가 선정한 140개 기업 가운데 유럽회사가 미국회사보다 많다. 미국인들은 일벌레로 살기 때문에 국내총생산(GDP)은 높을지언정 삶의 질은 유럽인보다 낮다. 살인사건 발생률이 유럽에 비해 4배에 이르고 미국 교도소는 범죄자로 넘쳐난다. 미국 어린이 사망률도 세계 26대 부유국 중 가장 높다.

물론 리프킨이 말하는 유럽은 개별 유럽국가가 아니라 유럽연합(EU)을 일컫는다. 유럽이 힘을 갖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다문화 공동체를 통해 추구하고 있는 다원적 협력의 틀 때문이다. 미국이 편협한 국익만을 추구하는 제국주의를 지향한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상황에서 유럽은 세계화를 선도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새로운 역사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 리프킨의 시각이다.

미국이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각과 세계가 미국을 보는 시각에는 이렇듯 엄청난 간극이 있다. 영국 BBC방송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절반 이상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당선이 세계안보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비미국인 중 58%는 부시의 재선이 세계안보에 부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답변을 했다(독일인 77%, 영국인 64%, 터키인 82%). 미국적 가치관이 자국에 전파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3분의 2가 반대했다(가난하고 독재가 심한 국가일수록 미국적 가치에 대한 지지가 높았다).

이런 조사가 나오자 미국 내에서부터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반미감정'의 실체에 대해 신중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럼 미국적 가치를 설파해온 한국의 주류 지식인들(정치인들 포함)은 이제 어떤 입장에 서야 할까.

우리가 찾을 정답은 아메리칸 드림에서 유러피언 드림으로 재빨리 이상향을 돌리는 데 있지 않다. 우리는 '코리안 드림'으로 불릴 수 있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한국만이 갖고 있는 경쟁력을 찾고 키우는 데 총력 질주해 세계와 어깨를 겨룰 시기다. 세계사의 주역은 한국인 바로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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