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법

3·8 세계여성의 날의 날을 맞은 8일 여성들이 행진했다. ⓒ여성신문
3·8 세계여성의 날의 날을 맞은 8일 여성들이 행진했다. ⓒ여성신문

2024년 3월 8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은 청계광장에서 제 39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했다. 그런데 보도자료를 뿌린 후 여성연합은 뜬금없이 “좌파단체”로 호명되기에 이르렀다.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등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들에게 성평등 걸림돌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관점에서 나름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자체장의 입장에서는 걸림돌 수상자로 지목된 것이 불쾌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여연을 굳이 “좌파단체”로 호명했어야 하는가는 이해하기 힘들다.  

걸림돌 수상자가 국민의 힘 소속 단체장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 행사를 좌파단체들의 정치적 공세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총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여성연합의 행사에 함께한 여성단체들이 진보성향의 정치인과 활동가들이 성폭력과 같은 사건에 연루되었을 때에도 매우 단호하게 비판했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 여성연합의 걸림돌상 시상을 단순히 좌파의 정치적 공세로만 읽어내는 것은 과도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성연합이 ‘여성 노동자’의 파업을 언급하기 때문에 “좌파 단체”인가? 그러나 이 역시 여성의 날의 의미를 역행하는 사고방식이다. 여성의 날은 처음부터 열악한 섬유 공장에서 일하다가 화재로 숨진 여성 노동자를 기리는 데서 시작하였고 따라서 조합결성이나 파업을 언급하는 것도 의례적인 일이었다. 이에 금년에도 민주노총은 대학로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성별 임금격차 해소, 평등한 돌봄, 여성노동권 쟁취의 구호를 외쳤고 한국노총도 한빛광장에서 여성노동자대회를 열고 여성이 공정하고 평등하게 대우받는 사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정치적인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사회에 가부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여성들이 여전히 비정규직에 몰려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의 날은 “여성”과 “노동”에서 시작했지만 여성이나 노동에“만” 머무는 날이 아니다. 일찍이 초기 여성운동가들은 여성뿐 아니라 노동자, 흑인, 노예, 어린이의 문제에 함께 연대해왔다. 2024년 세계여성의 날 구호가 “포용을 고취하라”인 것에 주목해 보자. 포용은 같은 것을 품어 안는 것이 아니다. 포용은 나와 다른, 사회적 약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부수자는 구호는 여성만 챙기자가 아니라 지역, 장애인, 성소수자, 돌봄 노동자 등 배제된 자들과의 연대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연합은 올 해의 여성상을 장애인 조직에서 여성운동을 함께 하는 활동가였던 고숙희 님에게 수여했다. 반대로 걸림돌은 이러한 포용과 연대의 정신을 훼손한 사람과 단체에게 수여했다. 좌파적 공세를 위해서라기보다 특정한 행동과 정책이 포용과 연대라는 여성의 날의 정신을 훼손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령 여성의 날의 핵심이 포용과 연대라면, 전문직 여성들의 맞벌이를 위해 저임금의 외국인 돌봄 노동자를 도입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로부터 멀어지는 정책일 수 있다. 이 정책은 저임금의 돌봄 노동을 여전히 여성에게, 그것도 제3세계 여성에게 전가하게 될 것이며, 이는 여성들 간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하게 될 수도 있다. 출생이나 돌봄의 문제는 젠더의 문제이지만 양극화나 인종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여연을 정치적 공세를 가하는 좌파 세력으로 보기보다 저출생, 고령화와 함께 나타난 돌봄위기를 젠더 문제와 교차적으로 살펴보는 정책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장 적절한 대응이 아니겠는가? 갈라치기가 아니라 포용과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 교수.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 교수. 

*필자: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 여성철학자, 한국여성학회 회장,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 취득, 최근 공저로는 <신유물론 페미니즘>(여이연 2023)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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