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 노동·성희롱 상담 사례집 발간
“나는 여자가 필요해”, “같이 자자” 등 돌봄노동자 성희롱·성폭력 피해 57건 분석
피해자 59.4% “기관에 신고해도 별다른 조치 취하지 않아”
성희롱 보고하자 “이상형인가보다. 그냥 잊어 버려라”
일부 기관은 업무 태만으로 경위서 작성 강요
기관의 적극적인 조치·피해자 보호 가이드라인 확산 필요

2021년 4월 27일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요양노동자 노동현장 고발 기자회견에서 폭언, 폭행 피해를 입은 요양보호사가 증언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4월 27일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요양서비스노동조합 주최로 열린 요양노동자 노동현장 고발 기자회견에서 폭언, 폭행 피해를 입은 요양보호사가 증언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장기요양기관·노인돌봄기관·장애인활동지원기관 등에서 일하다 성희롱을 당한 돌봄노동자들이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다수 기관은 피해를 신고한 돌봄노동자에게 “그냥 잊어 버려라”며 침묵하거나 업무 지적 및 퇴사 압박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어르신돌봄종사자 종합지원센터는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장기요양현장 돌봄노동자들을 상담한 내용을 정리해 ‘2022-2023 장기요양요원 노동·성희롱상담 사례집’을 5일 발간했다. 

사례집에 포함된 돌봄노동자 성희롱 피해사례는 총 57건으로, 건강보험공단에서 전국 종사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고충상담에 접수되는 성희롱 사례(연평균 15건)보다 훨씬 많았다.

상담 주제는 성희롱 56.1%(32건), 성추행 35.1%(20건)으로 가장 많았고 성폭력과 스토킹이 각각 1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성폭력의 경우 영상물을 전송한 사례로 성폭력처벌법 상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에 해당했다.

기타 사례를 제외한 53건 중 성희롱 피해자는 모두 여성 돌봄노동자, 가해자는 모두 남성 돌봄 서비스 이용자 및 보호자였다.

작가 storyset ⓒFreepik
작가 storyset ⓒFreepik

피해 사례를 보면, 이용자가 ‘나는 여자가 필요하다’, ‘남자 구실 한 번만 할 수 있게 해 달라’, ‘같이 자자’, ‘뽀뽀 한 번 하자’며 성희롱을 하거나, 피해자의 신체 특성을 언급하며 ‘통통한 여자가 좋다’고 말하거나, 식사 수발 중 돌봄노동자를 추행하고 목욕 중 성기를 만져달라고 하는 등의 피해가 있었다.

또한 여성 이용자의 남편이 요양보호사를 구석진 곳으로 끌고 가 안으려고 시도하고, 며칠 뒤 돌봄서비스를 신청해 피해자와 접촉하려 하자 피해자가 퇴사한 사례도 있었다.

피해자 56.2%(32건)는 사건 대응으로 기관에 피해 사실을 보고했으나 서비스 중단, 배치 변경, 주의 조치 등 돌봄노동자 보호 조치를 취한 기관은 40.6%(13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59.4%(19건)는 무반응, 수용 요구, 2차 피해 등 부적절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성희롱을 당한 주야간보호센터 종사자에게 관리자에 준하는 동료 요양보호사는 ‘이상형인가보다. 그냥 잊어 버려라’라고 말하고, 기관장은 피해자의 업무 미숙을 지적하고 경위서를 작성하게 했으며, 피해자를 지지하는 간호조무사를 면담하는 등 주위 인사에게까지 불이익을 준 경우가 있었다.

센터장과 보호자도 이용자의 성추행을 알고 있으면서도 ‘치매나 정신장애가 있는 경우 요양보호사가 이해해야 한다’며 묵인하거나, 성희롱 피해로 유급휴가비를 받은 피해자에게 퇴사 압박을 가한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기관에 부적절한 조치를 당한 피해자 34.4%(11건)는 돌봄 서비스를 중단했다. 기관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일을 그만둔 사례도 있는데, 이는 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고 스스로 일을 그만 두는 것 외에는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가 storyset ⓒ Freepik
작가 storyset ⓒ Freepik

성희롱·성폭력 및 2차피해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남성의 접촉에 대해 민감해지고, 남성 이용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일을 중단하는 등 업무에 지장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가족 간의 작은 접촉에도 놀랄 정도로 불안이 높고 분노, 수면장애 등으로 일상이 완전히 무너지기도 했다.

센터는 “현행법상 현장의 성희롱에 대처할 법적 의무는 장기요양기관 기관장에 있다”며 “기관은 공적 컨설팅 체계 구축, 관련 가이드라인 개발과 확산, 2인 1조 조치 등을 적극적으로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장기요양현장 성희롱 문제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성희롱 가해자에 대한 정보 관리 체계 마련, 수급 자격과 관련된 제한 조치 등 장기요양보험법 상의 법 개정이 있어야 해결할 수 있다”며 “초기 상담에서 법률권리구제까지 통합적인 상담 지원 시스템, 심리치유 지원 확대, 유급휴가비 지원 등 피해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규명하고 정책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성폭력·성희롱 피해 신고는 경찰청(☎112), 상담은 여성긴급전화(☎지역번호 + 1366)를 통해 365일 24시간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뉴스 댓글란을 통해 성폭력·성희롱 피해자 대한 모욕·비하 및 부정확한 정보를 유포하는 것은 여성폭력방지법의 2차 피해 유발에 해당합니다.

ⓒ여성신문
ⓒ여성신문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