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남성 청소년 성교육 전문기관
‘남다른성교육연구소’ 활동가 5인
학생 관심 못 끄는 학교 성교육에 답하다

“정치인 ‘성별 갈라치기’에 강사 비난”
무조건 지적보다 성교육 통해 풀어야
흥미롭고 이해 쉬운 성교육 연구 중요

한정민 남다른성교육연구소 활동가가 남학생들을 상대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남다른성교육연구소
한정민 남다른성교육연구소 활동가가 남학생들을 상대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남다른성교육연구소

“과거에 비해 남성 청소년들이 페미니즘을 더 싫어한다고 보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 유독 심해지는 시기가 있는데, 정치인들이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발언을 할 때에요. 윤석열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폐지하자'고 하면 다음날 학교가 시끄러워져요. 성교육을 하러 온 제게 ‘이XX 여가부에서 왔다’면서 다짜고짜 비난할 정도예요” (이한 남다른성교육연구소 운영위원)

학교에서 남성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성교육 활동가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발언한 다음날 남학생들을 만나면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이 거세진다”며 정치권의 성별 갈라치기가 청소년의 성인식에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서울 영등포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만난 5명의 ‘남다른성교육연구소’ 소속 성교육 활동가들은 “남성 청소년들이 건강한 성인지감수성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은 왜곡된 성의식을 답습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에 있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고상균 남다른성교육연구소 소장은 “정치권에서는 20대 남성의 표를 얻기 위해 기존의 성차별적 문화를 해소하기보다 갈라치기나 싸움으로만 소비하고, 정부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뽑지 않겠다고 하고, 학교 교사들은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할 때 남자들만 나오라고 한다”며 “이런 환경에서는 왜곡된 성인식을 갖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분석했다.

서울 영등포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만난 5명의 ‘남다른성교육연구소’ 소속 성교육 활동가들은 “남성 청소년들이 건강한 성인지감수성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은 왜곡된 성의식을 답습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혁 기자
서울 영등포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에서 만난 5명의 ‘남다른성교육연구소’ 소속 성교육 활동가들은 “남성 청소년들이 건강한 성인지감수성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원인은 왜곡된 성의식을 답습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에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혁 기자

이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성교육 전문가들이 모여 지난달 국내 최초 남성 청소년 성교육 전문기관 ‘남다른성교육연구소’를 만들었다. 남성 청소년들의 왜곡된 성인식으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체계적인 성교육을 준비하고,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 프로그램도 수립하며 남성 청소년을 이해하기 위한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성교육이 학생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학생들은 기성세대보다 성평등 수준이 평균적으로 높고, 온라인을 통해 성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접한다. 반면 기존 성교육은 학생들에게 성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교수는 남자만 해야 한다’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데, 지금의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성차별이고 본인의 삶과 밀접하지 않아 흥미를 끌지 못한다. 도리어 ‘요즘 누가 그렇게 말 하느냐’고 되묻는 학생들도 많다.

연구소는 남성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들을 통해 성평등이 본인에게도 도움된다는 인식을 심는 전략을 취했다. 먼저 학교생활, 스포츠, 학생인권조례, 군인권 등 남성 청소년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에서 드러나는 남성성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이를 해소한 뒤 디지털성범죄, 미투(Metoo) 및 전반적인 성차별 문제를 이야기하면 전보다 거부감 없는 소통과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유정 운영위원은 “청소년들과 남자로 살아가며 불편하고 이해되지 않는 점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한 뒤 성차별과 페미니즘에 대해 단계적으로 접근하면 학생들이 보다 편하게 성평등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상균 소장도 “청소년들에게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남성적 특성을 적어 박스에 넣으라고 한 뒤, 토의를 거치면 해당 특성들이 실제로는 남성성과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후 ‘나다움’, ‘사람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 성평등을 이야기하면 학생들의 인식이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한정민 남다른성교육연구소 활동가가 남학생들을 상대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남다른성교육연구소
한정민 남다른성교육연구소 활동가가 남학생들을 상대로 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남다른성교육연구소

강의를 마친 뒤 학생들이 제출한 참여후기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내용이 가득하다. “페미니즘은 남성을 공격하는 것이고, 역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는데 수업을 듣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남성다움이 아니라 나다움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등 긍정적인 반응에 강사들도 놀랐을 정도다. 성범죄 가해 청소년 재발방지교육에서도 "학교에서 이런 수업을 들었었다면 행동을 다르게 하지 않았을까' 등 변화의 목소리가 나타났다.

활동가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 청소년들의 공격을 백래시(조직적 저항)라며 비판하기보다 기성세대가 책임감을 갖고 교육 확대 등 청소년들의 성인식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유정 위원은 "남성 청소년들을 혼내지는 못할 망정 예산을 써서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들어오기도 한다. 교육으로 변하지 않는 청소년들도 있을 거다. 그럼에도 '나쁜 남자'가 되고 싶지 않은 청소년들이 가진 성별 고정관념과 차별적인 시선을 줄이기 위해서는 성교육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한 위원도 “청소년세대가 일으키는 문제는 기성세대가 만든 사회가 만들어낸 문제를 답습한 것이다. 환경과 교육에 따라 놀랍도록 빠르게 변하는 청소년들을 방치하고 문제를 지적하기만 하는 어른들은 부끄러워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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