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화된 재생산 불러일으킨다는 비판도

“난포가 오른쪽에 16개, 왼쪽에 8개 보여요. 지금 상태가 너무 좋다. 한 번에 20개 넘게 난자를 채취할 수 있을 거예요.”

기자는 만 26세. 난자 동결 상담을 받으러 갔을 때 의사는 웃으며 난자 상태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신다인 기자
서울 중구에 위치한 난자동결로 유명한 A병원, 오전 10시 29분이었는데도 사람이 많아 진료 대기시간이 20분이 넘었다. ⓒ신다인 기자

지난달 서울시는 ‘가임력 높은 20대가 시기를 놓치지 않고 건강한 임신을 준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해 난자동결 시술을 지원을 20대까지 확대했다. 난소기능검사(AMH) 기준을 3.5ng/mL로 완화하고, 난소기능 저하 유발 질환을 진단받은 사람은 수치와 상관없이 난자동결 지원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난자 동결 시술은 정말 여성의 재생산 자율성을 강화할까. 기자가 직접 상담을 받아봤다. 상담 결과 초진만 11만2610원, 시술을 받는다면 서울시가 200만원을 지원한다고 해도 최소 200만원 이상은 자비 부담을 해야 했다. 정부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식의 인구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나왔다.

35세 난자로는 출산 확률 95%

서울 중구에 위치한 난자동결로 유명한 A병원, 평일 낮이었는데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의사는 기자를 보고 어린 나이에 왔다고 놀랐다. “빨리 오신 편이에요. 사실 난자는 젊을수록 좋아요.”

의사는 35세부터 난소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난자를 냉동할 것을 권했다. 미국 생식의학회(ASRM)는 한 아이의 출생을 위해서는 38세라면 적어도 25~30개의 난자를 보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35세 이하는 40개 난자로 아이를 출산할 확률이 95%지만, 39세는 70%, 44세는 21%다.

의사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20대 난자는 몇 개만 있어도 시험관으로 출산 달성 확률이 높다”고 했다. 상담만 받으러 간 거였지만, 의사의 설명을 듣자 하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기자는 당장은 결혼과 출산 계획이 없지만, 혹시 나중에 아이를 낳고 싶어졌을 때를 대비해서 난자가 건강하다는 지금, 난자를 동결해야 할지 고민됐다.

과배란 유도 주사, 심한 경우 난소과자극증후군도

한 월경주기에 난소에서 약 15~20개의 난자(난포)가 자란다. 이 중 한 개의 난자만 성숙해 배란되고 나머지는 퇴화한다. 난자 동결은 생성된 난포를 모두 키우는 형식이다. 과배란 유도 주사를 통해 생성된 난소들에 6~9일간 영양을 투여해 난포가 적절히 자랐을 때 난자를 채취한다.

과배란 유도 주사 투여 및 난자 채취 일정 ⓒ차병원
과배란 유도 주사 투여 및 난자 채취 일정 ⓒ차병원

의사에게 수술비를 물어보니 400~600만원이 든다고 했다. 5년 후에 동결 연장 여부에 따라 추가 금액이 발생할 수도 있다. 서울시가 최대 200만원을 지원해 준다고 해도 최소 200만원은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난자동결을 받아볼까?’했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의사에게 좀 더 고민해 보겠다고 말하고 수납하러 갔다. 깜짝 놀랐다. 영수증에 '11만2610원'이 찍혀 있었다. 아직 피검사와 호르몬 검사를 하지 않았는데도 예상보다 비용이 높았다. 

난자동결은 부작용도 있다. 홍순철 고려대 안암 산부인과 교수는 “난자 냉동은 여성의 몸에 부담을 준다”고 지적했다. “원래 하나의 난포만 배출하는 게 정상 생리축인데, 5개에서 많게는 15개씩 배란을 시켜낸다는 건 그만큼 여성 몸에 부담을 주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작용이 심한 경우에는 난소과자극증후군 등이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모 병원의 영하 196℃에서 냉동 난자를 보관하고 있는 질소 탱크. ⓒ연합뉴스ⓒ연합뉴스
모 병원의 영하 196℃에서 냉동 난자를 보관하고 있는 질소 탱크. ⓒ연합뉴스

난자동결, 출산 지연시킬 수도

난자동결을 둘러싼 윤리적 논쟁은 아직 진행형이다. 일각에서는 난자동결은 여성이 적절한 배우자를 찾거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재생산 자율성을 강화한다고 평가한다. 여성이 가족 형성을 스스로 설계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난자동결로 인해 여성의 몸이 의료기술에 의해 통제받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난자 냉동 기술의 생명정치’ 논문을 쓴 정연보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제도적으로 육아휴직을 내는 것이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출산을 지연시키는 전략으로 과학 기술이 권유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여성노동자가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으려고 하면, 난자동결기술이 있는데 왜 냉동하지 않고 빨리 낳으려고 하냐는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정 교수는 난자동결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인구정책 흐름 안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출생 문제가 대두되며 피임기술은 점차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고, 보조생식술 같은 경우는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1970년대 정부는 불임시술을 받은 자에게 분양 우선권을 제공하는 청약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더불어 현재 피임 시술인 ‘루프’ 시술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지만, 임신하기 위해서 기존 루프를 제거하는 경우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난자 동결 시술시에는 유방초음파 혹은 유방촬영술 등 유방검진을 받는 것이 권장된다.    ⓒ신다인 기자
난자 동결 시술시에는 유방초음파 혹은 유방촬영술 등 유방검진을 받는 것이 권장된다. ⓒ신다인 기자

이어 그는 난자동결기술이 고객으로 어느 계급을 호명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광고나 담론에서는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고학력, 전문직 비혼 여성들이 난자냉동의 주된 고객으로 상상되고 있다”며 “‘계층화된 재생산’으로 불리는 정치학적 측면에 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2014년 6월부터 2016년 8월까지 미국과 이스라엘 여성 150명을 대상으로 난자동결 경험을 평가한 비교에서, 150명의 여성 중 1%만 고졸이었고, 25%는 학사학위, 43%는 석사학위, 23%는 의학박사 및 박사학위를 소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순철 고려대 안암 산부인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발전할수록 나중에 임신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근거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며 “과배란을 이용한 임신 시도는 여성 몸에 심각한 부작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회적 윤리 기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지난 14일 발간된 국회입법조사처의 '가임력 보존술에 대한 재정 지원의 쟁점과 과제'에 따르면 오스트리아는 비의학적 난자동결시술이 여성들의 출산을 미루도록 인도할 수 있고, 건강과 재정상의 희생에도 임신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에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헝가리, 리투아니아, 몰타, 노르웨이 등이 비의학적 난자동결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한편, 미국 국립 암센터에 따르면 '생식의료(Reproductive Medicine)'는 생식력 보존, 불임 진단 및 치료 및 기타 생식 문제를 전문으로 하는 의학 분야다. 생식의료는 사춘기, 폐경, 피임(산아 조절) 및 특정 성 문제와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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