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절차 무시하고 ‘폐지’ 추진
다른 부처 인사로 실국장 대체해
‘식물 부처’ 만들려는 시도까지

전국 902개 시민단체가 모인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은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은 성평등 정책을 실현할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고, 여성가족부를 정상화하라”고 촉구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
전국 902개 시민단체가 모인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은 23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은 성평등 정책을 실현할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고, 여성가족부를 정상화하라”고 촉구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

윤석열 정부가 ‘뇌 없는 정부 부처’를 탄생시켰다. 장관 없는 부처가 된 여성가족부 말이다.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총괄하는 수장 없는 조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는 것은 불 보듯 뻔 한일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어코 뇌 없는 부처를 만들어냈다.

윤 대통령은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의 사표를 무려 5개월 만에 수리하고 후임 장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전례 없는 일이다. 차관 대행 체제로 기형적으로 운영하고, 다른 부처 인사를 여가부 국·실장에 임명하겠단다. 부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뇌를 없앴고 손발까지 묶는다는 얘기다. 여가부가 ‘식물 부처’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닌가. 졸렬한 방식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부 부처 폐지는 정부조직법 개정이라는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가뿐히 무시했다. 윤 정부가 ‘여가부 폐지’ 공약을 이행하고 싶다면 총선에서 승리해 여당이 국회 다수당을 차지해 입법하면 될 일이다. 법치주의를 강력히 내세우는 윤 정부가 되려 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부처 형해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여가부는 출범 이후 23년 내내 존폐 위기를 겪어야 했다. 선거철마다 ‘공약’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한 까닭에 여가부 폐지는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 도구화’가 되기 일쑤였다. 폐지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부처의 규모는 늘거나 줄었다. 1988년 정무장관(제2)실,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 2001년 여성부, 2005년 여성가족부, 2008년 다시 여성부, 2010년 다시 여성가족부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도 장관을 임명하지 않은 정권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윤 정부는 여가부 폐지를 외치면서도 선명한 대안을 내놓은 적은 없었다. 여가부 기능을 어떻게 흡수‧통합할 지, 정부가 내세운 “실질적 양성평등”을 위한 성평등 추진체계 운영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그나마 여당이 ‘인구부’(가칭) 신설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여성 정책을 ‘출산’으로 국한하고, 여성을 인구정책의 도구로 보는 ‘부녀복지’로 회귀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를 지켜보는 여성계는 분노를 넘어 허탈함을 느끼고 있다. 여성단체 활동가 A씨는 “부처를 고사시키는 전략에 할 말을 잃었다”며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 전담부처인 여가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은 약자의 권리마저 짓밟는 행위”라고 했다. 성평등 정책 전문가 B씨는 “법치를 내세우던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하겠다며 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행태에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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