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레시피] (끝)

충남 태안읍 남문리 밭에서 농민들이 냉이를 수확하고 있다. ⓒ태안군
충남 태안읍 남문리 밭에서 농민들이 냉이를 수확하고 있다. ⓒ태안군

- 어, 이거 냉이 아닌가?
- 맞네, 냉이. 오, 벌써 냉이가 올라올 때구나.

매년 11월 말경 배추, 무 들을 수확해 그 자리에서 김장을 담그고 농장 문을 닫는다. 요즘은 다들 김장김치를 사 먹거나 절인배추를 이용한다지만 농사가 원죄인지라 김장은 늘 그렇게 한 해의 농사를 마감하는 대형 이벤트가 된다. 그리고 3개월 후 농장 문을 여는 것으로 묵은 겨울을 밀어내고 한해의 농사를 준비한다.

- 지칭개는 잎 뒤쪽이 흰색이고 뿌리 위에 붉은 기운이 있어요. 민들레는 잎이 뾰족뾰족 역삼각형으로 되어 있죠? 애기똥풀은 가운데 솜털이 자글자글하고.

이른 봄의 새싹들은 모양이 비슷비슷하다. 아내는 식물 눈이 밝지 않아 농막을 짓고 두해 정도는 구분법을 일러주어야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나보다 먼저 냉이를 알아본다. 이곳은 경기도에서도 북쪽인지라 보통 3월 말쯤 올라오는데 올해는 겨울이 일찍 끝난 덕인지 벌써 여기저기 냉이가 지천이다.

아직 잎이 작고 붉은 기운이 역력하지만 사실 냉이는 이때가 제일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 잎이 녹색으로 변하면 향과 맛이 덜하다.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뿌리에 심이 박혀 먹기도 고약하다. 슈퍼에서야 한참 웃자란 냉이를 파는지라 도시 사람들은 진짜 냉이의 맛을 모른다. 봄냉이는 뿌리가 좋고 가을냉이는 잎과 줄기에 영양분이 많다는 사실은 알까? 사실 양분으로 따지자면 이곳 자체가 한약방에 진배없다. 3월 냉이를 시작으로 조금 시간이 지나면 전호, 영아자, 민들레, 두릅, 다래순 등 야생 나물을 채집하느라 부부가 바쁘다. 도시 사람들에게야 땅이 투기의 대상이겠지만 땅은 시골에 내려와 비로소 자신의 본분을 지킨다. 아낌없이 내어주기.

노지에서 냉이 캐는 일은 무척 까다롭다. 채 녹지 않은 땅을 낑낑거리며 파고도(뿌리를 다치면 안 되기에 이것도 공이 많이 든다) 흙과 이런저런 이물질까지 제거해야 한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예전에는 처리가 무서워 모른 척했지만 먹는 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되면서 귀한 식자재를 얻는 일이라면 이렇듯 망설임이 없다. 깨끗한 슈퍼산 냉이를 사면야 몸도 마음도 편하겠지만 그 맛과 향을 노지 냉이에 비할 수는 없다. 게다가 그렇게 시간을 절약한다고 달리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는가.

우리는 봄나물 중에서도 냉이가 제일이다. 다른 나물보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자하는 이유다. 곧바로 무쳐 먹거나 된장찌개를 해도 좋지만, 깨끗이 씻어 데친 뒤 물과 함께 냉동실에 넣어두면 냉이의 향과 맛을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 냉이는 요리 방법도 다양하다. 인삼튀김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튀김. 재래 된장에 무쳐 바지락과 함께 끓여낸 된장국, 된장과 고추장을 반반씩 섞어 만든 무침. 모두 아내가,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다. 냉이처럼 향이 강한 나물로 반찬을 만들 때 마늘, 파 같은 오신채(五辛菜)를 넣지 않는 것도 우리 집 전통이다. 매운탕 등에 쑥갓, 미나리 대신 넣어도 좋고 파스타 재료로 써도 맛을 보장할 수 있다.

산에서는 복수초, 변산바람꽃 노루귀 들이, 마을에서는 매화, 산유수 꽃이 봄이 왔음을 알려준다. 우리같이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냉이가 그렇다. 가장 먼저 올라오는 나물. 우리 부부는 따뜻한 봄바람에 가벼운 수다까지 섞어가며 한 뿌리, 한 뿌리 냉이를 캐 바구니에 담는다.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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