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존치 결정에
‘여성 권리 침해’ 우려 목소리 나와
1인 화장실·긴급 비상벨·월경대 등 여성 고려 운영

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 ⓒ박상혁 기자
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 ⓒ박상혁 기자

국내 대학 최초로 설치된 성공회대학교 ‘모두를 위한 화장실(모두의 화장실)’의 존치 소식이 알려지자 ‘모두의 화장실이 여성들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제기됐다. 모두의 화장실 도입을 주장해오고, 성공회대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을 관리하는 이들은 “모두의 화장실은 여성들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모두의 화장실’ 고려 대상엔 여성도 포함

그동안 아들을 데리고 외출한 엄마, 남성 장애인을 지원하는 여성 활동보조인, 지정성별과 자기 성을 다르게 보는 성소수자 등은 시설 미비와 외부의 시선 등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나뉜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웠다.

모두의 화장실은 이 같은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성별·나이·성 정체성·장애를 떠나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성공회대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은 유아용 변기 커버, 기저귀 교환대, 자동문, 휠체어에 타서도 보기 편한 각도 거울, 외부 비상 통화 장치 등을 갖췄다.

이를 두고 불법촬영을 비롯한 성범죄, 화장실 내 이성 접촉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016년 발생한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과 같이 남녀공용화장실에서 발생한 여성 대상 범죄가 계속됐기에, 모두의 화장실이 본래 목적과 다르게 범죄의 장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두의 화장실을 관리하는 성공회대학교 인권위원회 소속 강나라 위원장과 김태현 부위원장은 이같은 우려에 대해 “모두의 화장실은 여성인권을 포함한 모두의 인권을 높이는 구조로 설계됐다”며 노후 건물에서 주로 보이는 남녀공용화장실과 다르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 ⓒ박상혁 기자
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 ⓒ박상혁 기자

모두의 화장실은 타인 간 접촉으로 곤란한 상황이 생기지 않게 이용자가 내부에서 문을 닫으면 밖에서는 문을 열 수 없는 ‘1인 화장실’이다. 이용자가 있을 때 외부에서 문을 열려고 시도하면 “내부에 화장실 이용자가 있다”는 소리를 나오게 해 범죄 가능성을 줄였다.

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 ⓒ박상혁 기자
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 ⓒ박상혁 기자

또한 비상시 외부와 통화할 수 있는 장치를 좌변기 바로 옆에 설치했고, 벽에 뚫린 구멍이나 나사 틈을 통해 불법촬영이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해 좌변기 방향으로 설치된 나사도 최소화했다.

아울러 좌변기 바로 옆에 작은 세면대를 설치해 월경컵을 쉽게 세척할 수 있으며, 비상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월경대를 상시 구비하는 등 여성이 안심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각종 시설을 마련했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강나라 위원장은 “불법촬영 방지를 위해 각종 안전장치와 더불어 주기적으로 카메라 설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며 “모두의 화장실 설치 이후 현재까지 어떤 범죄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에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최초로 설치됐다. ⓒ여성신문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에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최초로 설치됐다. ⓒ여성신문

모두의 화장실은 남자화장실 개조해 만든 시설

2022년 3월 설치된 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은 1년 만에 폐쇄 위기를 겪었다. 지난해 학생학부모교사인권보호연대(학인연)이 “모두의 화장실은 자연적인 성별 구분의 표지, 생리적 특수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성범죄와 성별에 따른 수치심을 야기할 수 있는 행위”라며 구로구청에 폐쇄 민원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구로구는 논의 끝에 모두의 화장실을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모두의 화장실 설치 과정에서 폐쇄된 여자화장실을 재개방할 것을 학교에 권고했다. 지난 15일 여성신문이 이 같은 결정을 보도하자 X(옛 트위터)를 중심으로 “왜 남자화장실은 두고 여자화장실만 폐쇄했나”, “성범죄 우려 등으로 모두의 화장실 이용을 원하지 않는 여성들은 화장실 이용이 어렵게 됐다” 등의 비판이 나왔다. 

모두의 화장실 옆 폐쇄된 여자화장실 ⓒ박상혁 기자
모두의 화장실 옆 폐쇄된 여자화장실 ⓒ박상혁 기자

이에 인권위는 “성공회대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은 남자화장실을 개조해 만든 시설”이라며 “여자화장실도 개조할 것을 고려했으나 모두의 화장실이 두 개가 되면 관습적으로 남녀 화장실로 나뉠 수 있고, 여자화장실을 열어두면 모두의 화장실이 여성이 사용하지 않는 화장실이 될 우려가 있어 하나로 통합해 운영하기로 했다”고 설치 과정을 설명했다. 

모두의 화장실이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될 경우 트랜스젠더 등 일부 성소수자들의 이용이 어려워져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1)’에 따르면, 응답자 591명 중 39.2%(231명)는 화장실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음료를 마시지 않거나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은 학교 시설 중 지하 1층 학식당 인근에만 설치됐다. 다른 층의 모든 화장실은 성별이 나뉘어져 있다. 모두의 화장실을 이용을 원하지 않는 경우, 같은 건물 1층 또는 다른 여자화장실을 이용하면 된다는 것이 인권위의 설명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서머빌 칼리지 학부생들이 학내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기로 했다. 사진은 미국 샌디에고 공항의 성중립적 화장실. ⓒ위키피디아
영국 옥스퍼드대 서머빌 칼리지 학부생들이 학내에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기로 했다. 사진은 미국 샌디에고 공항의 성중립적 화장실. ⓒ위키피디아

해외에서도 확산 추세…“여성도 편리한 공간으로 이해해주었으면”

모두의 화장실이 생소한 한국과 달리 미국, 스웨덴, 대만, 덴마크 캐나다 등 해외 국가에서는 비교적 쉽게 모두의 화장실을 찾아볼 수 있다. 일본 도쿄대는 2022년부터 다목적화장실(多目的トイレ)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도쿄대 홈페이지에서 지도를 통해 다목적 화장실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다. 

모두의 화장실을 비롯한 성중립화장실이 성범죄 증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UCLA) 연구 결과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등 소수자 친화적인 화장실을 설치한 지자체와 다른 지자체 간 범죄 사건 수나 빈도 사이에 별 차이가 없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남자화장실만 존재했던 사회에 여자화장실이 생기고, 뒤이어 장애인화장실과 가족화장실이 생겼다. 모두의 화장실도 비주류라는 이유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던 이들의 권리를 확장하는 차원으로 봐 달라”고 당부했다.

강나라 위원장과 김태현 부위원장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로 설계했기 때문에 성중립화장실이 아닌 모두의 화장실로 이름 붙여진 것이다. 이름이나 구조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여성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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