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화재 핑계로 해고·회사 청산한 닛토덴코
여성노동자들 한 달 넘게 고공농성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가 16일 경북 구미 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고용승계 보장을 촉구하고 공장 강제 철거 시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가 16일 경북 구미 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고용승계 보장을 촉구하고 공장 강제 철거 시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보라 작가 제공

2월에는 중간에 명절이 끼어 며느리 노릇을 하느라 데모를 많이 하지는 못했다. 명절 직전에 포항역 앞에서 민주노총 경북본부와 함께 선전전을 했고, 5일과 15일~16일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집회에 다녀왔다.

8일 포항역 앞 선전전을 하면서 “평등한 명절 보내세요”라고 외쳤는데 평등한 명절이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성으로서 결혼해 보수의 상징 경상도에(!) 와서 살면서 명절을 지내는 것이 여성인권에 해가 되는 게 아닐까 언제나 좀 걱정이 된다. 동시에 내가 명절을 만든 것도 아니고 나도 여잔데 왜 이런 걸 고민해야 하나 한심해지기도 한다.

정보라 작가가 설 연휴를 앞둔 지난 8일 KTX 포항역 앞에서 민주노총 경북본부 활동가들과 함께 선전전을 하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정보라 작가가 설 연휴를 앞둔 지난 8일 KTX 포항역 앞에서 민주노총 경북본부 활동가들과 함께 선전전을 하고 있다. ⓒ정보라 작가 제공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에서는 여성 동지들이 1월8일 고공농성을 시작해서 한 달이 훨씬 넘게 옥상에서 지내고 있다. 5일 여성파업 조직위원회가 3월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옵티칼하이테크 공장에서 오픈마이크 행사를 진행했다. 서울에서부터 전세버스를 타고 여성파업 참가자들이 달려왔다. 나는 인권네트워크 바람을 통해 행사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여성 조합원들은 재직 당시 모두 정규직이었는데 회사 측에서 알게 모르게 남성 노동자들과 차별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게 여성 노동자들에게 기계 다루는 업무를 주지 않는 것이었다. ‘기계는 남자의 일’이라는 편견이 작용한 결과인데,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편광필름 만드는 회사였으므로 무거운 기계를 힘으로 조작해야 하는 업무를 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측이 기계 다루는 업무는 남성에게만 주었고, 그래서 숙련 기술자로서 경력을 쌓을 기회나, 승진하고 임금 인상할 기회도 남성 노동자에게 더 빨리 주어졌다.

반면 고공농성 중인 여성조합원 소현숙 동지는 16년간 암실에서 불량품 검사하는 일을 하다가 각막이 손상됐다. 사측은 이렇게 소모적이고 반복적인 업무만 여성 노동자에게 몰아줬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차별이다.

그러나 발언한 노동자들 모두, 일할 때는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다들 정규직인 데다 사측이 이런 편견을 폭압적인 방식으로 강요하지 않았고 승진이나 경력, 임금 등 결과적인 차이는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드러났기 때문에 이것이 차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오래 걸렸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국 사회에서 성역할 구분과 성차별이 어떤 식으로 교묘하게 작동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여성파업 오픈마이크 행사는 오후에 시작됐는데, 이날 아침 사측이 보낸 청산인이 공장진입을 시도하고 조합원들을 밀치고 막말을 해서 여성 조합원 두 명이 다쳤다. 사측의 남성 청산인이 자기보다 작고 가벼운 여성 조합원만 골라 공격해서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다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새삼 또 화가 났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가 15일 경북 구미 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고용승계 보장을 촉구하고 공장 강제 철거 시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가 15일 경북 구미 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고용승계 보장을 촉구하고 공장 강제 철거 시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가 16일 경북 구미 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고용승계 보장을 촉구하고 공장 강제 철거 시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이 3m 높이 망루에 올라 쇠사슬로 자신의 몸과 망루를 연결한 채 농성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가 16일 경북 구미 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고용승계 보장을 촉구하고 공장 강제 철거 시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이 3m 높이 망루에 올라 쇠사슬로 자신의 몸과 망루를 연결한 채 농성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사측은 16일 오전 10시에 조합 사무실을 철거하겠다고 통보했다. 오전 10시에 철거를 시작한다면 중장비를 몰고 와야 하니 아침 일찍 들어올 것이다. 노조에서는 전날부터 1박 2일로 철거 저지 집회를 준비했다. 공장에 가까운 구미와 경북 노조는 물론이고 전국에서 노동조합과는 별 관계가 없는 일반 시민들, 대학생들도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 15일 저녁 고공농성하는 동지들이 보이는 공장 마당에 모여 다음날 준비 집회를 열고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5일에 청산인에게 떠밀려 다리를 다친 사무장이 통깁스를 한 채 서서 국과 밥을 배식하는 것을 보고 한국KEC지회장과 내가 국자와 주걱을 뺏고 사무장이 식사하고 쉴 수 있도록 내쫓았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에 옵티칼 지회를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서로 소개하고 인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10년, 혹은 그 이상 부당해고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서로 투쟁 이야기를 하면서 가끔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기도 했다.

그리고 걱정하던 16일 아침이 밝았다. 미리 말하지만 이날은 별 사건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전날보다 더 많은 연대자들이 모여 있었다. 주최 측 추산 1000명, 조금 조심스럽게 추산해도 700여 명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오전 7시 반부터 모여서 공장 밖에 울타리를 지키며 늘어선 차량을 정리하고 망루를 설치하고 철거를 막아낼 준비를 했다. 아침 8시 40분에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들이 몸에 쇠사슬을 두르고 나왔다. 일본 본사에 항의하러 간 조합원과 고공농성 중인 두 명, 진두지휘를 맡은 지회장을 제외하고 일곱 조합원이 망루 앞으로 나와서 ‘투쟁’을 외쳤다. 다섯 명은 3m 높이 망루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고, 손발에 깁스를 해서 사다리를 오를 수 없는 두 명은 망루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앉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가 16일 경북 구미 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고용승계 보장을 촉구하고 공장 강제 철거 시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이 3m 높이 망루에 올라 쇠사슬로 자신의 몸과 망루를 연결한 채 농성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가 16일 경북 구미 하이테크 공장 앞에서 고용승계 보장을 촉구하고 공장 강제 철거 시도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다. 조합원들이 3m 높이 망루에 올라 쇠사슬로 자신의 몸과 망루를 연결한 채 농성했다. ⓒ정보라 작가 제공

나는 쇠사슬 감은 동지들이 망루를 오르기 시작할 때부터 너무 무서워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망루 바로 아래 한중간, 공장을 바라보는 쪽에는 ‘공장폐쇄 저지! 고용승계 쟁취!’ 등이 적힌 현수막이 설치돼 바깥 상황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줄지어 선 다른 연대자들과 함께 망루 바로 아래 현수막 앞에 서 있었다. 바깥 상황이 안 보이면 좀 덜 무섭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망루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망루 위에 쇠사슬을 감고 앉아 있는 동지들이 많이 다칠 것이다. 그게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망루가 움직이지 않게 붙잡고 버틸 수 있는 곳, 망루가 기울거나 쓰러지면 나도 동지들과 함께 깔릴 만한 곳에 서 있기로 했다.

경찰이 주변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오전 10시가 다가왔고, 드디어 법원 집행관과 청산인이 찾아왔다. 나는 그냥 내내 눈앞의 현수막과 머리 위의 망루에 앉은 동지들의 등만 보고 있어서 별로 할 얘기가 없다. 조합 사무실 단층건물 지붕 위에 여러 사람들이 올라가서 연대 발언을 했다. 아사히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잘 싸우는 옵티칼 동지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은 ‘불법(佛法이다, 不法 아님)’의 인연으로 만났으니 모두 연대해서 승리하자고 말씀하시며 ‘투쟁!’으로 마무리하셨다. 민주노총 경북본부장은 “본부장이 말하는데 밖에서 청산인이 잡소리를 하고 있어! 본부장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하고 야단을 쳐서 안에서 긴장하며 서 있던 연대자들이 모두 웃었다.

공장 울타리 바깥에서 몇 번 고성이 오가기는 했지만 두 시간 정도 그렇게 서 있다가 대치는 조용히 끝났다. 망루에 올라갔던 동지들이 쇠사슬을 풀고 내려오고 나서야 나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고공농성장에 세로로 걸린 현수막 세 개 중 가운데에는 “모두의 생존을 지키는 깃발이 되어”라고 적혀 있다. 나는 옵티칼 동지들이 자랑스럽지만, 누군가 깃발이 되어 모두의 생존을 지킬 필요가 없었으면 좋겠다. 다들 그냥 평온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망루에 올라 농성하는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들. ⓒ정보라 작가 제공
망루에 올라 농성하는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조합원들. ⓒ정보라 작가 제공

2월 5일 여성파업 오픈마이크에서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최근 한국니토옵티칼 평택 공장에서 신규직원 20명을 채용했다는 것이다. 일본 닛토덴코는 구미에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평택에 한국니토옵티칼을 운영하고 있으며 양쪽 공장 간 인력·업무 교류가 활발했다. 그러다 구미 공장에 불이 나자 본사는 보험금 1300억만 챙기고 공장을 폐쇄해서 지금 조합원 11명이 평택 공장으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다. 그런데 사측은 평택 공장에서 신규 직원을 20명이나 채용하면서 구미 공장에서 성실하게 일한 노동자 11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버리겠다는 것이다.

사측은 다시 공장을 철거하러 쳐들어올 것이다. 고공농성은 계속된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 와서 세금도 안 내고 공장부지를 공짜로 쓰며 천문학적인 이득을 챙겨 실업자만 남기고 ‘먹튀’를 했고, 한국 경찰과 한국 공무원과 한국 노동자들이 서로 싸우며 그 뒤처리를 하고 있다. 정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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