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 ‘모두의 화장실’, 시민단체 민원에 폐쇄 위기
논의 끝에 폐쇄 대신 안내문 부착·여자화장실 재개방 권고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의 논의 끝에 존치가 결정됐다. ⓒ여성신문
서울 구로구 성공회대 새천년관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의 논의 끝에 존치가 결정됐다. ⓒ여성신문

시민단체 민원에 폐쇄 위기에 놓였던 국내 대학 1호 ‘모두의 화장실’이 존치된다. 서울시 곳곳에 자리잡은 ‘가족화장실’과 구성이 동일하고, 불법촬영 등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한 학교의 노력이 인정받은 덕분이다. 모두의 화장실은 성별, 장애, 연령 등에 의한 불편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뜻한다.

여성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구로구청은 지난해 12월 성공회대학교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을 폐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취지의 공문을 학교에 전했다. 다만, 모두의 화장실을 소개하는 안내문을 부착하고, 화장실 설치 과정에서 폐쇄됐던 여자화장실을 재개방할 것을 권고했다.

구로구청은 15일 여성신문과의 통화에서 “성공회대학교에 설치된 모두의 화장실은 이름만 다를 뿐 곳곳에 설치된 가족화장실과 동일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며 “학교에서 오랜 기간 토의한 뒤 설치했고, 불법촬영 등 범죄를 막기 위한 점검도 꾸준히 하고 있어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측면에서 존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성공회대는 구청 권고에 따라 이달 중으로 모두의 화장실을 계속 운영하며 화장실 입구에 안내판을 붙이기로 했다. 여자화장실 재개방의 경우 추가 논의 후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모두의 화장실 존치를 주장했던 학생들은 구청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보냈다.

강나라 성공회대학교 인권위원장은 “모두의 화장실 존치로 보다 많은 사회 구성원들이 교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며 “화장실을 이용하기 어려워 학습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도 당연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모두의 화장실과 더불어 교내 모든 화장실의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며 “점검 이후 교내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등 범죄가 발생한 사례는 없다”고 단언했다.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중 성공회대에 처음으로 설치됐다. ⓒ연합뉴스
장애 유무나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이 국내 대학 중 성공회대에 처음으로 설치됐다. ⓒ연합뉴스

모두의 화장실은 성별·나이·성 정체성·성적지향·장애를 떠나 누구나 쓸 수 있는 형태의 화장실을 뜻한다. 유아용 변기 커버, 기저귀 교환대, 시각장애인용 점자블럭, 자동문, 휠체어에 타서도 보기 편한 각도 거울, 외부 비상 통화 장치 등을 갖추고 있다.

행정안전부에서 발행한 ‘공공청사 유니버설디자인 적용안내’를 보면, 기존화장실과 별도로 가족 혹은 보호자와 함께 사용이 가능한 다목적 화장실을 1개소 이상 설치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성공회대학교는 2017년 첫 논의를 시작해 2022년 3월 완공 후 운영을 시작했다. 카이스트도 같은 해 12월 학내 총 6개의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했다.

지난해 6월 30일 학인연이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오늘 구로구청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성공회대 성중립화장실에 남녀 분리하고 안전 문제 해결하라고 개선명령 내릴 예정이라고 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네이버 카페 캡처
지난해 6월 30일 학인연이 운영하는 네이버 카페에 “오늘 구로구청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성공회대 성중립화장실에 남녀 분리하고 안전 문제 해결하라고 개선명령 내릴 예정이라고 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네이버 카페 캡처

한편, 지난해 학생학부모교사인권보호연대(학인연)는 구로구에 성공회대학교 모두의화장실을, 대전 유성구에 카이스트 ‘모두를 위한 화장실(모두의화장실)’을 폐쇄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학인연이 구로구청에 제출한 민원서를 보면, 학인연은 모두의 화장실 설치에 대해 “자연적인 성별 구분의 표지, 생리적 특수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성범죄와 성별에 따른 수치심을 야기할 수 있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같은 해 6월 30일 네이버 카페에 “오늘 구로구청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다. 성공회대 성중립화장실(모두의화장실)에 남녀 분리하고 안전 문제 해결하라고 개선명령 내릴 예정이라고 했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렸으나, 구로구청이 해당 내용을 부정하면서 게시물을 내리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유성구는 “모두의 화장실에 대한 명확한 시설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카이스트에 폐쇄명령을 내리지 않았으며, 구로구도 존치 결정을 내림으로써 국내 대학에 설치된 모두의화장실 모두 명맥을 잇게 됐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