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5일 인천 남동경기장에서 열린 여자축구 2023 W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인천 현대제철과 수원FC 경기, 현대제철 손화연(왼쪽)이 해트트릭을 달성한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1월 25일 인천 남동경기장에서 열린 여자축구 2023 W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인천 현대제철과 수원FC 경기, 현대제철 손화연(왼쪽)이 해트트릭을 달성한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아시안게임 4강 진출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태극 전사들이 출전하는 경기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전폭적인 지원이 끊이지 않고 전 국민이 밤잠을 설치며 응원할 텐데 굳이 관심을 보태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관심은 체육 교육에서 소외된 여성 청소년, 남성 선수보다 연봉을 적게 받고 대우가 열악한 여성 운동선수에게로 옮겨 갔다. 성차별로 인한, 이러한 사회 문제를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했는데 본받을 만한 모델이 미국에 있었다.

미국의 타이틀나인은 스포츠에서의 성차별을 제도로써 극복한 전무후무한 사례로 역사에 기록됐다. 미국 교육에서 최초로 성차별을 금지한 법안인 타이틀나인은 1972년에 제정돼 교육뿐 아니라 법, 스포츠, 인권, 페미니즘 등에 영향을 행사하며 미국 사회를 바꾸었다. 오늘날에는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이래 가장 중요한 법’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타이틀나인이 적용되는 범위도 넓다. 여성 입학과 채용의 기회, 성적 괴롭힘과 성폭행 생존자 지원을 위한 정책 개선, 소수자 권리 보호 등이 있는데 개중에서 특히 여성의 스포츠 활동 기회를 확대한 부분이 흥미롭다.

타이틀나인의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주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공립 교육기관은 남녀에게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학업은 물론, 운동부에서도 성별에 따라서 참가 자격을 제한하거나 차별적으로 대우할 수 없으며 남녀 운동부 참여 비율이 50대50을 이뤄야만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당시 미국 고등학교와 대학은 남성이 주축인 농구와 미식축구 말고 여학생이 참여할 만한 종목을 선택해서 여성 운동부를 새로 만들었다. 이는 미국의 여자축구가 빠르게 성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2015년에 캐나다 여자월드컵에서 미국을 우승으로 이끈 메건 라피노 등 스타가 몸담은 드림팀이 타이틀나인의 수혜로 탄생한 황금세대다.

이들은 미국 여자축구를 세계 최강으로 만드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캐나다 여자월드컵 우승 이후 미국 축구협회를 임금 차별을 이유로 양성평등고용위원회에 고발했다. 2019년 프랑스 여자월드컵에서 연거푸 우승하면서 “여자 선수들이 남자팀보다 훨씬 적은 연봉을 받는 건 불합리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연봉만이 아니라 훈련 예산, 전용기 사용, 경기 날짜와 시간 등의 처우에서도 남자팀과 등등한 대우를 요구했다.

그러나 협회는 남자팀이 여자팀보다 많은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차등 보상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며 여자 선수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 다툼 끝에 2022년, 양측은 소송을 모두 취하하고 성별과 관계없이 동일한 연봉과 대우를 보장한다는 단체교섭에 합의했다. 라피노를 비롯한 여성 선수들은 ‘동일 노동, 동일 임금’ 투쟁에서 승리하며 미국 페미니즘의 상징이 됐다.

미국의 사례를 그저 부러워하던 나는 그 험난한 투쟁의 과정을 기록한 책 『타이틀나인』을 읽으며 이 법안이 실효성을 갖기까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책에는 타이틀나인이 현장에서 시행되기까지 숱한 반발과 방해가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여학생 팀의 지원 확대가 곧 남학생 팀의 지원 축소라는 헐뜯기가 있었고 타이틀나인으로 인해 백인 여성들이 운동부에 유입되고 기존 운동부의 주류인 흑인 남성이 차별당한다는 주장으로 인종끼리의 대결 구도를 만들기도 했다. 나중에는 ‘운동하는 여성은 못생긴 레즈비언’이라는 여성혐오와 인신공격까지 동원됐다.

사회가 후퇴하기는 쉬워도 진보하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력 없이 사회 발전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자연히 우리 사회가 타이틀나인 같은 법을 추진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여성이 성차별로 인해 체육 교육과 운동에서 소외된다는 전제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에서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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