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있었던 존재들』펴낸 원도 작가
5년차 과학수사요원의 일과 삶 담아
고독사·자살...묻히고 잊힌 삶들 기려
“변사자? 삶이라는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전사자’”

원도 작가. ⓒ원도 작가 제공
원도 작가. ⓒ원도 작가 제공

투신자살, 목맴사, 고독사.... 쓸쓸한 부고가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다. 뉴스를 보고 애달파하면서도, 목매달아 죽은 이의 시신을 내려 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다. 뛰어내려 세상을 떠난 이를 추모하면서도, 두개골이 부서져 사방에 흩어진 뇌 조각을 줍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경찰관 원도가 그 사람이다. 올해로 8년 차 경찰관. 5년째 과학수사과에서 현장 감식을 맡아 변사자 수백 명을 만났다. “신발 바닥이 끈적거리는 체액에 쩍쩍 달라붙”는 부패 변사 현장도, “변사자의 휴대폰을 잠금해제하기 위해 영안실에서 차갑게 굳은 손가락을 연신 어루만지”다가 “사후경직으로 인해 변사자의 손이 내 손을 꽉 잡는 순간”도 홀로 감당해 왔다.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에세이집 『있었던 존재들』을 펴냈다. 지난 2년간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칼럼을 다듬고 새 글을 더했다. 2019년 지구대에서 근무하며 겪은 일과 감정을 편지 형식으로 쓴 화제의 책 『경찰관속으로』 이후 다시 생생한 경찰관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22일 여성신문사에서 만난 원도 작가는 앳되고 밝았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담담하게 하다가도 재치 있는 한마디로 모두 한바탕 웃게 했다. 취미는 게임과 드라이브, 후배들을 보고 ‘요즘 애들은~’ 하며 꼰대로 변하는 자신을 깨닫는 평범한 직장인이기도 했다. 참혹한 사건사고 현장을 일터로 삼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어두울 거라는 편견도, 경찰은 어떤 광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냉철하게 현장에 뛰어드는 사람일 거라는 고정관념도 그가 깨 줬다.

원도, 『있었던 존재들』(세미콜론) ⓒ세미콜론 제공
원도, 『있었던 존재들』(세미콜론) ⓒ세미콜론 제공

“변사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전국 어딜 가도 업무의 70%는 변사 같아요.” 과학수사요원이 되기 전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는 줄 몰랐다. 방수팩에 신분증을 넣고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린 사람, 베란다 창문을 현관문으로 착각해 추락한 치매 노인, 배달 음식을 받으러 나가듯 집에서 서둘러 나가 그대로 투신한 청년, 앉은 채로 목을 맨 사람, 아내가 부활할 거라 믿고 부패할 때까지 방치한 지적장애 가족....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이웃들의 일상이다.

장애가 있는 가족과 살던 이가 부패한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그는 뇌병변 장애인인 오빠와 재활원에서 만난 다른 장애인들을 떠올렸다. “저를 발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한때는 사람이었습니다”라는 어느 변사자의 유서, 고독사한 기초수급자가 생전 담당 공무원에게 보낸 “죄송합니다. 제 몸이 이상하네요. 연락 부탁드려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발견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되, 타인의 고통을 전시하고 흥밋거리로 소비하지 않기 위해 고민이 많다. “변사자의 집 서랍을 열어보면 뭔가 되게 많은 걸로 이루어진 삶이거든요. 하나만으로 알 수 없는 거죠. 참혹하기만 한 게 아니라, 그래도 나아갈 페이지가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특별히 마음이 쓰이는 현장이 있었을까. “깨끗한 집이요. 대부분의 현장이 더러운데, 집을 깨끗이 정리해 놓고 가는 분들이 있어요. 옷이 하나도 없고 이불 딱 하나 있고. 주로 어린 친구들이죠. 제 또래들... 마음이 좋지 않아요.”

대한민국에서 하루에 34.8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어지간한 사연이 아니면 죽은 이의 삶을 궁금해하는 이는 드물다. 과학수사요원은 그들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가장 마지막에 듣는 사람이다.

“현장에서 보니 사회 초년생이나 노인이 자살한 경우가 많아요. 청년은 취업 실패, 노인은 아파서요. 10대도 있었어요. 가족들이 한집에 있었는데 방에서 자살했죠.” 사회 현안으로 떠오른 20대 여성 자살 급증에 대해선 “체감상 젊은 여성들의 자살은 급증한 게 아니라 항상 많았던 것 같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책에서 그는 “자살을 ‘극단적인 선택’이라 하지만 극단적인 건 언제나 삶이고 빌어먹을 세상이더라”라고 탄식했다. “믿을 수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 사회적으로 논의가 부족하다니 (...) 이들을 ‘변사자’ 대신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지 못한 ‘전사자’로 부르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원도 작가. ⓒ원도 작가 제공
원도 작가. ⓒ원도 작가 제공
원도 작가. ⓒ원도 작가 제공
원도 작가. ⓒ원도 작가 제공

타인의 고통을 만지고 분석하는 경찰도 제 마음을 돌봐야 살 수 있다. 원도 작가는 힘들수록 글을 썼다. 여성 경찰관은 여전히 약 10%뿐이고 ‘여경 혐오’가 판치는 사회에서, 그의 든든한 뒷배이자 동료가 돼 준 ‘언니들’에 관한 책 『아무튼, 언니』(2020)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가 꾸준히 몸부림친 덕에 우리는 일선 경찰관, 특히 여성 경찰관들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글쓰기가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상상에 잠기는 걸 좋아하고요. 일이 잘 안 풀리면 왜 난 이것밖에 못 하나 싶은데 글을 쓸수록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한 단계 나아가게 되는 것 같아서요. 작가가 되면 산에 틀어박혀 글만 쓸 것 같고 생계가 곤란할 것 같았는데, 독립출판 시장이 커지고 책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졌어요.”

차기작은 소설이다. “한 파출소에 같이 발령 난 동기 경찰관 3명에게 일어나는 우당탕탕 휴먼 스토리”를 구상 중이다. 소설가는 그의 오랜 꿈이다. 대학생 시절 학내 문학 공모전에 단편소설로 1등을 차지한 적도 있다. 드라마 작가에도 도전할 계획으로 따로 교육원에 다니며 공부하고 있다.

“드라마보다 현실에 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많더라고요.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지만요. 너무 내 일이 힘들다면 남의 일처럼 보면 어떨까요. 삶을 틀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안은 많다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세상의 온갖 고통을 목도하고도 희망을 말하는 그가 참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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