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입법조사처 ‘청소년 정치적 기본권’ 토론회
만18세 투표 가능하지만 투표율은 평균 이하
입시 압박, ‘정치적 중립’에 교사도 몸 사려
UN·인권위 “청소년 정치 참여권 확대해야” 권고
전문가 “정치 교육 늘리면 의견 반영 높아질 것”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당시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선거연령 하향조정으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삼일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선거 사전투표 당시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행궁동 행정복지센터에 설치된 사전투표소에서 선거연령 하향조정으로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삼일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학교에서 선거 교육이 왜 필요한지, 시민의식을 갖추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교육 중 하나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게 됐어요.” - 조예원 삼각산고등학교 학생

만18세 청소년이 투표권을 갖게 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치에 관심을 갖는 청소년은 ‘하라는 공부는 않고 쓸데없는 것에 관심을 둔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청소년과 교육계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단순히 투표권 행사를 넘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득구·강민정·도종환·장혜영 국회의원과 국회입법조사처가 주최한 ‘청소년 정치적 기본권 토론회’가 1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학생, 교사, 교육부 등 청소년 당사자와 교육계 인사들이 자리에 참여해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2021년 4·7 보궐선거일인 7일 오전 부산 사상구 모라중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고3 학생이 투표용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21년 4·7 보궐선거일인 7일 오전 부산 사상구 모라중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고3 학생이 투표용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청소년 투표 가능해지자 '서울시장 선거' 앞두고 선거 교육

청소년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도가 확립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20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등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됐다. 선거운동 참여연령도 18세로 낮아지면서 선거 과정에서 정치적 의사를 전보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청소년의 선거권 확보에 따라 일부 학교에서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선거와 투표의 의미를 이해하고 정치와 관련한 의견을 교류하는 ‘정치적 기본권’ 교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2021년 서울·부산 보궐선거를 앞두고 서울 강북구 삼각산고등학교는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거 교육을 진행했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은 서울시장 선거 공보물을 놓고 시장 후보들이 누가 있는지 살펴보고, 후보자들의 공약을 분석했다. 토론을 통해 어떤 후보가 서울시장에 적합한지 토론하고, 후보 별 부족한 공약을 지적하고 보완하는 시간도 가졌다.

당시 수업에 참여한 조예원(18)씨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거 교육이 왜 필요한지 배웠고, 교육을 통해 자신감을 얻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우리가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 이런 시간이 꼭 필요한 교육 중 하나라는 생각을 처음 해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조예원 삼각산고등학교 학생. ⓒ박상혁 기자
조예원 삼각산고등학교 학생. ⓒ박상혁 기자

청소년 투표율, 전체 평균 크게 밑돌아

한편, 공직선거법 개정 후 만18세 청소년이 참여한 세 차례에 선거에서 청소년 투표율은 전체 평균에 비해 낮은 경향을 보였다. 2022년 열린 제20대 대선에서 18세 청소년은 전체 평균(77.2%)보다 5.9% 낮은 71.3%의 투표율을 보였다. 같은해 열린 제8회 지방선거에서는 전체 평균(51.5%)보다 15.4% 낮은 36.1%의 투표율에 불과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사회적 환경 탓에 청소년의 정치적 기본권이 박탈당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선거 전 청소년들이 선거와 투표의 의미를 이해하고 정치와 관련한 의견을 교류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청소년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 탓에 이 과정 없이 투표권만 갖게 된다는 것이다.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학생들을 조사한 남미자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학생들이 학생자치기구 등에서 의견을 내도 실제 의결에 참여할 수 없고, 정당에서도 ‘기특하다’고 칭찬할 뿐 의견을 받아들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무시하기만 한다”며 “청소년을 한 명의 동등한 시민이 아닌 보호와 배려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조현서 휘봉고등학교 교사는 “지방선거, 대통령선거, 총선 등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대한 융합 수업을 하면 학생들은 방과 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관심을 갖는다”면서도 “학년이 오르면 대학입시의 중요성이 커져 두고 학생들이 정치적 활동을 하기 어려워진다. 성적이 낮은 학생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면 ‘오지랖’이라고 비난받기 때문”이라고 학교 현장을 설명했다.

교사(공무원)는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 또한 청소년 정치 교육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김새봄 교육부 인성예술체육교육과 과장은 “교사들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치 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견을 내면 정치적 중립성을 위반했다며 민원을 받고, 그것이 실제 신변에 위협을 주기 때문에 교육을 진행할 수 없다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2020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사전투표소 앞에서 열린 '보다 완전한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 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 청소년들이 정치 참여활동 보장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사전투표소 앞에서 열린 '보다 완전한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 단체 기자회견'에서 참석 청소년들이 정치 참여활동 보장을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청소년이 정치에 관심 가질 수 있도록 사회 시선·제도 바꿔야"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이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적 시선과 제도를 대폭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미자 연구위원은 “UN아동권리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 모두 청소년이 학업성적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정치적 참여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법률 및 학교 규칙을 개정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며 “청소년을 정치적 주체이자 동료시민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으로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기 어렵다면, 정당·지자체·시민단체와 연계해 청소년 정치교육을 진행하는 방법도 있다. 독일의 경우 15개 주정치 교육원이 있으며, 주정치교육원에서 정치교육과 청소년 정치 참여 관련 행사 및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조예원씨는 “선거 교육을 들으며 미국, 일본, 캐나다, 독일, 핀란드 등 많은 나라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여러 형태의 선거 교육 프로그램을 살펴봤다”며 “우리도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청소년 정치 교육이 시행되면 실제 정치에서도 선거권을 가진 학생들이나 젊은 후보들의 의견이 더 잘 반영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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