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형 노린 기습공탁 논란

대법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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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이른바 ‘기습 공탁’으로 인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피고인의 형사 공탁 사실이 검찰에 더 빨리 통지되도록 업무처리 방식을 개선했다. 기습 공탁은 형사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변론종결 이후 선고 직전 감형을 목적으로 피해자 의사에 반해 형사 공탁을 하는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공탁이 접수되면 검찰에 형사공탁 사실 통지서 원본을 팩스로 빠르게 송부하게끔 각급 법원 공탁소의 업무처리 방식을 변경했다고 1월 29일 밝혔다.

형사 공탁이란, 피해자와 합의에 실패한 피고인이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해 법원에 돈을 맡기는 제도다.  법원은 공탁을 가해자가 피해 복구를 위해 노력한 것으로 간주해 형량을 줄여주는 요소로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2022년 12월부터 피해자의 인적사항 등을 몰라도 공탁이 가능한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시행된 이후 선고 직전에 공탁해 감형받는 부작용이 이어지고 있다. 또 이제까지는 공탁소에 형사공탁이 접수되면 같은 건물에 있는 법원에는 직원이 직접 통지서를 전달하되 검찰에는 우편을 통해 발송해 왔다. 

이에 따라 검찰에 통지가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고, 특히 선고 기일을 얼마 남기지 않고 형사공탁이 이루어질 경우 검찰이 제때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해 재판부에 의견을 개진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었다.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형사공탁 특례제도를 개선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법원행정처는 “검찰은 법원과 동시에 형사 공탁 사실을 인지할 수 있게 되고 신속히 피해자의 의사를 확인해 재판부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도 형사 공탁 특례제도가 그 본연의 취지대로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다양한 개선 방안을 강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직검사들 “용서를 돈으로 사나” 비판

현장은 물론 검찰 내부에서도 시행 1년을 맞은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피고인들의 감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판2부 손정아, 박가희, 임동민 검사도 대검찰청이 발행하는 ‘형사법의 신동향’ 81호에 이 같은 제안을 담은 연구논문 ‘형사공탁의 운용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를 게재했다.  

손 검사 등은 피고인의 형량에 공탁을 어떻게, 얼마나 반영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양형기준이 없는 탓에 법원이 혼란을 겪고, 일부 판사들의 경우 피해자의 처벌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공탁금을 피고인의 ‘반성의 증거’로 보고 감형하는 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가 두드러지는 것은 피고인이 기습 공탁을 시도할 때다. 변론이 모두 종결된 뒤 재판부의 선고만 남겨둔 상황에서 피고인이 기습적으로 거액을 공탁하는 경우, 피해자나 검찰의 의견을 들을 새도 없이 재판부가 공탁금을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로 반영해 형을 선고한다는 것이다.  

검사들은 기습공탁을 원천 방지하기 위해 즉각적인 공탁 사실 통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탁이 이뤄지면 증거 기록을 갖고 있는 법원 또는 검찰에서 공탁 사실을 피해자에게 알려 알 권리 및 재판 절차 진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월 지하철에서 여성을 추행한 피고인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항소심에서 벌금 500만을 선고했다.

선고기일 6일 전 피고인이 1000만원을 기습공탁한 것을 유리한 양형 조건으로 반영했기 때문이었다. 선고 후에야 피고인이 거액을 공탁한 사실을 알게 된 검찰은 ‘피해자 의사 확인 없이 공탁만을 이유로 1심 판결을 파기하는 것은 형사공탁 제도 취지에 맞지 않고 판례에도 반한다’며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해당 상고를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상고로 보고 ‘양형부당은 상고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상고기각 했다.

검사들은 이러한 기습공탁을 방치하는 현행 형사공탁 제도를 두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용서를 돈으로 살 수 있게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피고인의 배상 여부를 감형 요소로 인정하지 않는 미국·영국 사례를 언급하며 ‘강력범죄와 성범죄에서만큼은 형사공탁을 감형 인자로 인정해선 안된다’고 짚었다.

현행 기준에 따르면 강력범죄 사건에서 피고인의 형사공탁은 피해자의 ‘처벌불원’ 표시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피해자에게 합의를 강제”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검사들의 주장이다.

특히 “성범죄에서의 형사공탁은 ‘피고인이 생각하는 피해자의 몸값은 딱 이 정도’라는 메시지와 함께 2차 가해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도 말했다.

검사들은 현행 공탁제도는 법원이 피고인의 공탁 사실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고하는 방식을 채택해 피해를 키우고 있다면서 “형사공탁이 있을 경우 그 사실을 원칙적으로 피해자에게 고지함으로써 의견 제시의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검찰청은 형사공탁 특례제도를 악용해서 감형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데 대응하기 위해 피고인이 선고일 직전에 공탁을 걸면 검사가 선고 연기 또는 변론 재개를 신청하기로 했다. 기습공탁 행위를 반복하는 피고인 등에게는 선고형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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