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 이예람 중사 부친 이주완씨
“딸아이 보낸 슬픔, 장 뜯어내는 것보다 아파
억울한 죽음 만든 책임자 모두에 끝까지 책임 물을 것
내 아이 명예 찾는 길이 다른 유족들에게도 도움 되길 바라”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61)씨는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설치된 이 중사의 추모소를 3년째 지키고 있다. ⓒ박상혁 기자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61)씨는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설치된 이 중사의 추모소를 3년째 지키고 있다. ⓒ박상혁 기자

상사의 성추행과 군 부실대응에 저항하다 세상을 떠난 고 이예람 중사의 유족들은 3년째 이 중사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사건을 은폐하고 피해자를 비난하는 데 앞장선 이들에 대한 처벌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이 중사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다른 군 피해자 유족들에 좋은 선례를 남기기 위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23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 중사의 아버지 이주완(61)씨는 억울하게 생을 마감한 딸의 추모소를 3년째 지키고 있다. 이씨의 목에는 이 중사의 군번줄이,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에는 이 중사의 사진이 걸려있다. 세상을 떠난 딸의 명예를 되찾는 날 자르기로 맹세한 수염은 전보다 훨씬 길게 자랐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근무하던 이예람 중사는 2021년 3월 상관인 장모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이를 부대에 즉시 신고하고 피해 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요청했으나 회유와 방치, 2차 가해 등에 시달렸다.

심리적으로 큰 고통을 겪은 이 중사는 제15특수임무비행단으로 전속을 갔으나 이미 성추행 피해 사실이 부대에 유포된 뒤였다. 옮긴 부대에서조차 괴롭힘을 당한 이 중사는 2021년 5월 21일 군의 조직문화를 비판하며 생을 마감했다. 후에 발견된 이 중사의 유서에는 “군의 모든 조직이 나를 버렸다”고 적혀 있었다.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가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추모소에 설치된 이 중사의 추모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가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추모소에 설치된 이 중사의 추모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내 아이 명예 찾는 길이 다른 유족들에게도 도움 되길 바라"

이씨는 딸의 죽음을 알게 된 날 “단장(장이 끊어짐)의 고통”을 느꼈다. 그는 자식의 명예 회복을 위해 싸우다 건강이 나빠져 2022년 장 절제술을 받았다. 지금은 심신이 더욱 악화돼 식사량이 줄고 먹어야 하는 약의 수가 늘었다. 또한 이씨는 "배우자는 사건 관계자들의 무죄 선고에 충격을 받아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딸아이가 자결했을 때 느낀 고통이 실제로 장을 잘랐을 때보다 비교할 수 없이 컸다”며 이 중사에 대한 진상규명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 딸을 자결케 한 관계자들이 엄중한 처벌을 받고,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군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이 다른 군 피해자와 유족들에 도움이 되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유족과 언론, 군인권센터와 정치권의 노력 끝에 2022년 이 중사 사건에 대한 특검이 출범했다. 군 내부에서 발생한 성폭력 및 사망사건 등의 범죄는 민간 수사기관과 민간법원이 다루도록 군사법원법이 개정됐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에 군 인권침해 조사와 피해자 권리보호 등을 수행하는 독립기구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설치됐다.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가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추모소에 설치된 이 중사의 추모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가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추모소에 설치된 이 중사의 추모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박상혁 기자

"억울한 죽음 만든 책임자 모두에 끝까지 책임 물을 것"

그러나, 이 중사 사건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는 전익수 전 공군본부 법무실장은 지난해 6월 1심에서 ‘권력에 기반한 사건 개입은 부적절하나 이를 처벌할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또한 지난 15일 이 중사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치한 혐의를 받는 김모 대대장도 ‘피고가 반드시 2차 가해 방지를 지시할 구체적 의무가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군인권보호관의 경우 지난해 7월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사건 수사와 관련해 박정훈 수사단장(대령) 집단항명수괴죄에 대한 긴급구제 건을 기각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씨는 “군 장병들의 억울한 죽음을 막기 위해 여야 의원들이 힘을 모았다는 것이 뜻 깊다”면서도 “조직 중심의 군 제도가 변하지 않아 상부의 잘못을 온전히 처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 중사가 세상을 떠나게 한 책임자들에게 온전히 책임을 묻기 위해 대법원까지 법정 다툼을 이어갈 계획이다. “인명은 제천이라고 하니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잘 싸우고 싶다”며 이 중사의 명예 회복을 위해 사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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