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산다]

연말에 책을 출간했다. 바뀌어 가는 세상 안에서 커리어를 설계해 온 사연을 경쾌하게 풀어낸 에세이인데, 많은 관심을 받았다. 북 토크 제안도 받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연초다 보니 한 해 먹거리를 계획하는 일부터 각종 행사까지 일정이 빼곡했다.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나 대신 질문에 답해줄 존재로 AI를 찾아냈다. GPT 스토어(https://chat.openai.com/gpts)에서 “학습하는 직업봇”을 검색하면 나오는데, 책의 일부분을 학습시켜 저자와 질의응답을 하듯 대화가 가능하다. 성능이 퍽 좋아져서, 내 말투나 뉘앙스도 꽤 잘 구현한다.

‘학습하는 직업봇’ GPT 캡쳐화면.
‘학습하는 직업봇’ GPT 캡쳐화면.

그런데 “나는 유료 고객이 아니라 못 쓴다”는 분들이 많았다. 알고 보니 유료 챗GPT(ChatGPT) 사용자만 GPT 스토어를 쓸 수 있었다. 아이폰 사용자만 앱스토어에 접속할 수 있듯 말이다. 지난 한 해를 휩쓸다시피 했던 챗GPT의 유료 고객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듯해 데이터를 찾아봤다. 한 달 전쯤 챗GPT 1주년을 맞아 한 데이터 분석기관(Data.ai)이 낸 자료에 따르면, 출시 이후 챗GPT로 오픈AI가 벌어들인 돈은 2860만 달러(우리 돈 약 383억원) 정도라고 한다. 앱 결제분만 합한 금액이고 웹 결제분은 빠졌다.

Data.ai에서 분석한 ChatGPT 앱의 유료 결제 주간 경향. ⓒData.ai
Data.ai에서 분석한 ChatGPT 앱의 유료 결제 주간 경향. ⓒData.ai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한 달간 발생한 매출을 보면 980만 달러(약 131억원) 정도다. 월 구독제 금액(20달러)으로 나눠 보면 전 세계적으로 대략 49만 명이 이 서비스를 돈을 내고 쓰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고객의 지갑을 여는 게 무척 어렵다지만, 출시 두 달 만에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한 대기록을 쓰고도 유료 전환율은 0.5%에 불과한 것 아닌가. 20달러면 넷플릭스 미국 프리미엄 요금제(동기간 19.99달러)와 비슷한 금액인데.

물론 챗GPT의 매출을 걱정할 이유가 없어 보이긴 하다. 오픈AI가 당장 더 큰 돈을 버는 곳은 사실 GPT-4를 비롯한 원천 기술 사용료일 테니 말이다. 그간의 학습 비용 등 각종 투자 비용을 생각하면 이들이 내놓은 제품이 더 큰 시너지를 내야 하는 것도 맞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분명 필요할 거다.

그런데 AI 기술이 정말 우리 삶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그 기술의 사용 유무가 사람들의 격차를 더욱 가속화한다면, 그 가격은 어떻게 매겨져야 할까? 영원히 무료일 수는 없을까? 유료 고객과 무료 고객이 경험하는 성능의 차이는 얼마가 적절할까?

비슷한 논의가 한 병원 예약 앱의 ‘월 사용료 1000원’ 정책을 둘러싸고 벌어졌듯, AI 기술 기반 서비스에 대해서도 분명히 고민이 있어야 할 거다. PC 통신 가입비를 내고, 가정집 통신요금을 내고, 스마트폰을 구매하던 것처럼, 새롭게 삶을 치고 들어오는 기술에 대한 비용은 분명히 새로운 지출을 만들 것이다. 챗GPT를 기준으로 20달러(약 2만 6000원) 정도 되는 월 고정 지출이 가계부에 한 번 더 얹어지듯 말이다.

다만 AI 서비스와 얽혀서 돈을 쓸 곳이 어디 챗GPT뿐일까. PPT 슬라이드를 끝내주게 잘 만들어주는 앱도, 전 세계 모든 웹사이트 언어를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바꾸어주는 프로그램도, AI 챗봇들을 골라 매일 대화할 수 있는 오락용 플랫폼도 있다. 무료로 쓴다는 것도 한정된 크레딧(사용량) 안에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은 꽤 많이 사라졌다. 더 나은 성능을 원한다면 대개 구독을 해야 하는데, 문제는 구독 전후의 성능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이다. 단지 불편함을 이기는 문제가 아니다.

서비스를 기획·개발·운영하는 비용은 말로 다 하기 힘들 정도로 매우 가파르게 올랐다. 자체적으로 초거대 언어모델(LLM)을 구축하려면 순식간에 수백억 원이 든다. 가격 책정 시 높은 투입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회사와 고객 모두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점점 불어나는 AI 제품 중 몇 개가 각 가정 또는 개인들의 고정 지출 목록에 들어가게 될까. 사용자의 지갑을 직접 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매출을 올리는 법은 무엇이 있을까. 2024년은 AI가 실질적으로 개개인의 삶에 쑥 밀고 들어오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민의 답을 풀어갈 시점이 왔다.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유재연 옐로우독 파트너

소셜임팩트 벤처캐피털 옐로우독에서 파트너로 일하고 있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 분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주로 인공지능 기술과 인간이 함께 협력해가는 모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AI랑 산다>는 장밋빛으로 가득한 AI 세상에서, 잠시 ‘돌려보기’ 버튼을 눌러보는 코너다. AI 기술의 잘못된 설계를 꼬집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AI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이들과, 그리고 그 기술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짚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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