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7개월 만에 사건 조사 결과 발표
피해자 “허 위원장의 사과 원했으나 조사 불응”
허문영 “‘의도적’이라는 판단 받아들일 수 없어”

지난 2022년 10월 14일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부산 해운대구 KNN 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결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 2022년 10월 14일 허문영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부산 해운대구 KNN 시어터에서 열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결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사)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해 불거진 허문영 전 집행위원장의 성희롱‧성폭력 의혹과 관련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19일 발표했다. 사건이 공론화된 지 7개월 만이다. 하지만 끝은 개운치 않다. 피해자는 사과를 원했으나, 허 전 위원장은 조사와 재조사에 모두 불응했고, 결론이 나온 뒤에도 “의도적이라는 판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했기 때문이다.

19일 영화제 입장문에 따르면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지난해 5월 31일 당시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을 언론보도를 통해 인지한 뒤 같은 해 6월 5일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에 신고했다.

이후 객관적·전문적으로 조사하고자 외부전문기관인 부산성폭력상담소 부산문화예술계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에 위탁해 진상조사를 벌였다. 상담소는 사건 조사 및 처리 절차에 따라 조사위원회와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조사 및 심의를 진행했다.

영화제 측은 “조사위는 법무법인 변호사와 노무법인 노무사를 포함해 구성했으나, 피신고인(허 전 위원장)이 전문성 및 객관성 담보를 이유로 조사기관 변경을 요청하며 수차례의 조사 권고에 응하지 않았다”라며 “부득이하게 신고인 및 참고인 조사로 진행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피해자는 허 전 위원장이 계속 조사를 거부하자, 조사기관 변경과 그에 따른 재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으나 그 또한 허 전 위원장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영화제 측은 “조사위는 신고인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적인 점, 참고인들의 구체적 진술이 상호일치 되는 정황 조사를 토대로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며 “사건 이후 전 직원 대상 전수조사를 비롯해 성평등 캠페인, 심화 교육 등 예방교육을 실시했으며,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직문화를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영화제는 △임원의 책무 및 자격 조건을 강화하는 정관 개정 △직장 내 성희롱 예방 및 신고 상담 절차 규정 개정 △피해자 보호조치 및 2차 피해 발생 방지 △피해자 지원 등 규정 보완 △사건처리 전담기구 지정 △고충 상담원의 전문교육 이수 △임원별·직급별 성범죄 예방교육을 추진했다고 알렸다.

피해자에 대해서도 공식 사과했다. 영화제 측은 “성평등하고 안전해야 할 직장에서 해당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피해자 보호와 초기 조사 절차 과정이 미흡했던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부산국제영화제 직원들과 부산국제영화제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실망과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했다.

피해자 “재발 우려돼 피해 사실 공개 결심”

영화제 측은 이날 피해자의 입장도 함께 공개됐다. 피해자는 “부산영화제에서 근무하는 동안 피신고인으로부터 지속적인 성적 불쾌감을 견뎌왔다. 그리고 지난 5월, 피신고인이 영화제로 복귀할 경우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이 우려돼 내가 겪은 피해 사실을 공개하게 됐다”며 “당시 피해 사실 공개는 관계인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 생각돼 고민이 많았지만 결국 모두를 나아지게 만드는 또 하나의 길이 될 것이라 믿었다. 이에 피신고인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와 성적 불쾌감을 느꼈던 직원들에게 사과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고 공론화 과정을 설명했다.

피해자는 이어 “신고인에게 지난 5개월간은 당시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과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상세히 진술해야 하는 일들의 반복이었다. 이 시간을 견뎌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본 사건은 이미 언론을 통해 공론화돼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 있으며 진상 조사를 통해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의 재발방지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성실하게 참여해 왔다”면서 “피신고인 또한 한때 해당 사건이 발생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그 지위에 대한 책임을 다해주길 기대했다. 그러나 계속된 진상 조사 거부로 사건 처리는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고 결국 긴 시간 지체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고인측은 피신고인 측이 제기한 대로 조사기관의 객관성을 보완한 재조사를 요청했고 재조사 과정에서 변경되는 모든 조건을 수용하겠다는 협조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최근 재조사 불응 의견을 또 다시 피력한 피신고인에게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또한 “가해자로 지목된 전 집행위원장의 사직 처리로 조사 참여에 강제성을 부여할 수 없게끔 원인 제공을 한 부산영화제 측은 피해 발생 기관으로서 무한한 책임감을 갖고 진상이 규명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허문영 “‘의도적’이라는 판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

‘피신고자’인 허 전 위원장의 입장도 함께 공개됐다. 허 전 위원장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사건의 객관적 조사는 피해자 지원활동과 별개의 영역”이라며 “피신고인은 조사 개시 2주 전인 2023년 6월 19일 부산영화제 측에 법률적 전문성, 공정성 등이 우선시되는 법무법인 혹은 노무법인으로의 조사기관 변경을 정식 요청했지만 부산영화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에 피신고인은 이번 조사에 응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조사를 거부한 경위를 밝혔다.

조사주체를 변경한 뒤 재조사에도 응하지 않은 까닭에 대해 그는 “아무런 경위 설명 없는 조사기관 변경 제안은 재조사로 인해 피신고인이 감수해야 하는 불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행정절차며 신규 조사기관은 앞선 조사기관의 조사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과 시간 경과로 인한 진술의 오염 가능성, 신고인과 참고인의 2차 피해 유사상황 발생 등이 우려돼 재수사 역시 응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허 전 위원장은 “나의 어떤 말이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안기는 사례가 있었다면 온전히 나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적이고 의도적이라는 판단, 특히 나의 내면적 의지에 대해 단언하는 ‘의도적’이라는 판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나에 관한 논란이 부산영화제에 끼칠 피해를 우려해 집행위원장직에서 최종적으로 물러난 이후 그간 나의 삶을 겸허하게 되돌아보는 자숙의 시간을 가져왔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럴 생각이다. 뜻하지 않게 심려를 끼쳐드린 많은 분께 다시 한번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