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트랜스젠더 성별정정에 수술 확인서’ 지침 폐지 검토
성확정 수술 최대 6000만원 들어
성확정 환자 절반 이상이 부작용 호소
“성별 정체성은 기본권, 법원이 수술 강제할 수 없어”

2021년 3월 2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에서 참가자들이 거리를 두고 서있다.  ⓒ연합뉴스
2021년 3월 27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에서 참가자들이 거리를 두고 서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트랜스젠더는 성전환수술(성확정수술)을 받지 않아도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을 전망이다이 조항이 폐지되면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이 더 쉬워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대법원이 성별정정 신청인에게 성확정 수술 증명서 제출 요구 조항을 폐지하는 쪽으로 검토에 들어갔다고 지난 7일 법률신문이 보도했다.  

성별 정정은 트랜스젠더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많은 트랜스젠더가 주민등록번호 등에 명시된 지정성별과 사회적으로 살아가는 성별이 일치하지 않아 일상과 사회생활 전반에서 차별과 혐오를 겪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1) 결과를 보면 트랜스젠더 10명 중 6명(57.1%)이 트랜스젠더 정체성과 관련해서 직장에 지원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또 10명 중 3명(27.9%)은 의료조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차별과 혐오로 의료기관 방문을 포기했다고 답했다.

트랜스젠더가 취업을 하고, 병원을 가는 등 사회구성원으로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법적 성별 정정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적 성별 정정 조건은 까다롭다.

2006년 6월 대법원은 각급 법원이 성별 정정 사건을 심리할 때 지침으로 삼아야 하는 예규를 마련했다. 예규에는 △정신과적으로 성전환증 진단을 받았는지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 △생식능력을 상실했는지 등을 ‘참고’해야 한다고 규정(가족관계등록예규 제550호)하고 있다.

예규는 참고 사항이지만, 대다수의 재판부에서는 성확정 수술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사실상 성확정 수술을 받지 않으면 성별 정정은 불가능했다. 

시민단체 성소수자부모모임이 발간한 ‘트랜스젠더 성확정 수술을 위한 의료 정보 가이드북’에 따르면, 트랜스젠더의 58%가 성확정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성별 정정을 시도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확정 수술은 국민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수술비 부담이 크다. 위 가이드북에 따르면, 지정성별 여성의 10명 중 4명이 성확정 수술을 받기 위해 600만원 이상 비용이 들었다고 응답했다. 지정성별 남성의 5명 중 1명은 수술비용으로 4000만원을 지불했다고 답했다. 수술비용은 수술부위와 의료기관 등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서 최저 300~6000만원까지 차이를 보였다.

성확정 수술의 부담은 비용만이 아니다. 성확정 수술을 받은 이들의 절반 이상이(52.4%)가 합병증 및 부작용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30대 후반의 트랜스여성은 장 폐색을 겪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이유로 성별 정정 시 성확정 수술 여부를 확인하는 대법원의 예규가 트랜스젠더의 건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5월 “예규 제6조 등 일부 조항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대법원에 예규를 전반적으로 개정해 성별정정 재판에서 인격 침해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침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성별 확정 수술을 받지 않더라도 성별 정정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지난해 11월 20일 발의하기도 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소속 박한희 변호사는 “오히려 외국에서는 정신감정서 등도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국제적으로 뒤처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이 지금 예규의 성전환 수술 요건을 삭제하는 쪽으로 적극적으로 검토를 해서 당사자들이 겪는 고통을 해소할 수 있도록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의 말처럼 성확정 수술 확인서 요구는 세계적으로 사라지는 추세다. 지난해 12월 일본에서는 성확정 수술을 받지 않아도 성별 변경 신청이 합법화됐다. 독일 대법원은 2011년 성확정 수술 요구는 성적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침해한다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아르헨티나는 성별 정정 시 증명 서류가 필요하지 않다. 신청인은 만 18세 이상이고, 성별 변경을 원한다는 진술과, 변경하고자 하는 이름만 제출하면 새 신분증이 발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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