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용기라면 이 곳에서도 당당해질 수 있을 것이다…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현후일 뿐이다. 그리고 엄마와 민후와 두 명의 아빠, 그리고 할머니들도 모두 다 내 가족이다. 나는 지금 아빠처럼 김씨도, 엄마처럼 이씨도, 그리고 친아빠처럼 박씨도 될 수 있다. 나는 '김이박 현후'다. 그리고 성씨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바로 우리 가족이라는 사실이다.

오시은 장편동화 '나는 김이박 현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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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안주호>

내심 염원하면서도 '설마∼'하던 호주제 폐지에 대해 성큼 체감지수가 높아졌다. 지난 연말 정치권 합의에 따라 2월 임시국회를 기다리게 된 것. 이제 나도 97년 3·8 한국여성대회를 계기로 부모 성을 함께 써 넉자였던 내 이름을 다시 석자로 되돌려 놓을 마음의 채비를 해야겠다.

당시 여성계 대선배들이 호주제 폐지를 위한 상징적 문화운동으로 부모 성(姓) 함께 쓰기 운동을 선언한 이후 무조건적으로 동의하고, 어엿한 정식 이름 앞에 썼던 엄마·아빠 성 '박이'다. 그 후 7년여 세월 동안 내 이름 넉자를 말하거나 명함에서 발견하는 순간 마주친 사람들의 반응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이름 넉자만으로 맹렬 혹은 극성 여성운동가로 간주해 한 발짝 거리를 두려던 제스처, 부모 성을 함께 쓸 경우 결혼하면 그 아이들은,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은…이런 식으로 끝도 없이 셈 계산을 하며 도대체 어떻게 되느냐며 따져 묻거나, 무슨 공식이 그토록 괴상스럽고 또 논리가 없냐며 어이없어 하던 표정…사람들은 낯선 것엔 그 익숙지 않음으로 인해 우선 혐오감부터 가진다고 한다. 그러나 낯선 것에 도전하고, 또 시험하며 자신에 맞춰나가는 것은 '발전'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비록 생존전략서이긴 하지만,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란 제목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일 것이다. 순수 혈통과 가계를 유난히 중시하는 우리 한국인의 특성상 그만큼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쉽지 않은 결단이자 혁명적 태도에 준하는 것일 테고, 이를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낯선 것과 익숙해지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동안 직·간접으로 호주제 폐지에 대한 단상이나 여론을 들으면서 호주제 폐지 역시 낯섦과 익숙의 논리, 그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비례해 낯섦에 대한 경계가 풀어지고 혐오감이 옅어지는 것을 목도했다… 이제,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대의명분상으로도 약하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다.

우리의 의식 발전 척도를 가늠해 볼 기회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누구는 '초유의 문화혁명'이라고도 하지만, 우리가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사고와 성품의 깊이를 갖추고 있는지 시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좀 더 수평적이고 성숙한 인간관계를 '가족' 단위에서부터 맺어 가는 훈련을 시작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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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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