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60대 여성운동가 중심 '여성사 시청각 자료'행사 열려

80년대부터 여성사 자료 발굴 중요성 대두

1901∼39년 프랑스 여성운동 제1물결 참정권 운동 자료

1968년 5월 혁명 이후 현재까지 여성운동 제2물결 자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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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여성운동가들이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성적 독립 만세' 라는 깃발을 들고 파리에서 행진하는 장면. 앞에서 가방을 손에 걸치고 열성적으로 손뼉을 치고 있는 여성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에 대한 연구를 한사회학자 도미니크 후지호다.

지난해 11월 27일 토요일 이른 아침 파리 13구 국립도서관 지하 강당에 50대, 60대 여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70년대 여성운동의 물결에 몸을 던졌던 역전의 여성 운동가들이다. 그 사이 사이에 20대와 30대 젊은 여성들의 모습도 보였다. 여성 영화를 만드는 젊은 영화인들이거나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여성사를 연구하는 여성들이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여성사 연구를 위한 시청각 자료'라는 제목의 행사가 열렸다.

이날 열린 국립도서관 행사는 70년대에 만들어진 여성운동사 관련 시청각 자료들을 어떻게 수집, 복원, 분류, 활용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모임에는 여성 비디오아티스트, 여성학자, 여성운동가, 여성사 자료 담당 사서 등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여성사 자료 보존과 여성사 연구 활성화 그리고 여성운동의 발전을 위해 토론을 벌였다.

제1부 토론에서는 국립영화센터(CNC), 국립시청각센터(INA), 국립도서관(BNF)에 흩어져 보관돼 있는 여성관련 시청각 자료의 내용을 파악하고 분류·사용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기관마다 보유하고 있는 자료들의 시기나 주제들이 어떻게 다른지를 점검하면서 토론 중간 중간에 여성운동사의 중요한 장면이나 대표적 여성 운동가들의 대담 장면들도 보여 주었다.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시몬느 드 보브와르의 모습이 보이는가 하면 영화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여성운동의 해악을 말하는 대조적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시몬느 드 보브와르 vs 브리지트 바르도

대조 주장도 눈길

국립도서관의 여성사 자료 담당 사서들은 공무원이라기보다는 여성운동가의 분위기를 풍겼다. 아닉 틸리에를 비롯하여 10여명의 사서들은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일기, 자서전, 편지, 소설, 영화, 녹음테이프, 유인물, 사진, 판화, 사회학연구조사보고서 등 다양한 종류의 여성 관련 자료들을 분류하여 색인집 '여성사 연구를 위한 자료들'을 출판하기도 했다.

제2부 토론에서는 크레테이 여성영화제를 주도한 자키 뷔에를 비롯하여 70년대에 페미니즘 관련 영상 자료를 만든 여성들이 직접 나와 자신들의 작업을 회고했다. 여성 비디오 제작 단체인 '복종하지 않는 여자들'은 “텔레비전은 여성의 삶을 반영하려는 욕구도, 능력도 없다. 비디오를 통해서만 여성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하면서 피임과 낙태 문제, 모녀관계, 육아와 여성 건강 문제, 임금차별과 성폭력 문제, 여성의 성욕과 동성애 문제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78년에 엑상프로방스에서 만들어진 여성 비디오 운동단체 '에렐 비디오'는 여성들의 사회 경제적 연대 형성을 위한 작품을 만들었고, 또 다른 여성 비디오 단체 '아타랑트'의 창립자인 드니스 브리알(Denis Brial)은 여성운동의 모임이 있는 곳이면 언제든지 나타나 비디오 카메라를 들이댔다. 당시 여성들에게 비디오 작업은 여성으로서 발언권을 갖는 행위였다. 2부 토론회 중간에 그가 만든 작품 '프랑스 여성해방 운동: 1970∼2004' 일부를 함께 감상하기도 했다.

82년에 만들어져 사라지거나 훼손될 우려가 있는 여성 관련 비디오 테이프를 수집, 복원, 보존, 배포 작업을 하던 '시몬느 드 보브와르 시청각센터'는 여성운동의 잠정적 후퇴와 더불어 92년 문을 닫았다가 95년 이후 새롭게 활성화된 여성운동에 힘입어 다시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11월 내내 여성 기록 영화를 상영, 리옹의 매춘 여성들의 생 니지에 성당 점거 사건을 다룬 기록물, 좌파 노동운동가들의 남성중심주의를 다룬 기록물, 여성 영화배우들이 촬영현장에서 감독이나 기술진과 맺는 관계를 인터뷰하여 만든 작품 등 70년대 중반에 만든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이날 3부에서는 공공기관과 민간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여성사 관련 시청각 자료들을 여성사 연구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결론에서 참석자들은 여성운동이 당면한 현안을 해결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집결하느라 여성운동의 자료 보존을 경시하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여성사 연구의 축적과 여성운동의 미래를 하나의 축에 놓고 생각해야 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또한 여성단체들이 나서서 여성 관련 시청각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복원·분류하여 여성 공동의 기억을 보존하고 여성사 연구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80년대 미셸 페로를 중심으로 한 여성사 연구가 활성화된 이후 여성사 연구자료의 발굴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었다. 지금까지 여성사연구 자료의 보고는 1931년 문을 연 '마르그리트 뒤랑 도서관(Bibliotheque Marguerite Durand)'이다. 19세기 후반에 '프롱드'라는 신문을 창간한 여성 언론인 마르그리트 뒤랑이 남긴 여성운동 자료실을 기반으로 만든 이 도서관은 이후 프랑스 여성사 연구의 요람이 됐다. 그러나 뒤랑도서관은 70년대 이후 진행된 여성운동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으고 분류하여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일을 하기에는 인력과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 있다.

'페미니즘 역사 자료' 단체 창립

이에 따라 2000년 뒤랑도서관과 연대하면서도 여성사 자료 보존을 위해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즘의 역사자료'가 창립되었다. 여성사 자료 발굴을 위한 긴급한 노력 없인 여성운동의 귀중한 자료가 다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절박함에서 만들어진 이 단체는 20세기를 중심으로 여성운동사 자료를 수집, 정리, 분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먼저 프랑스 여성운동의 첫 번째 물결이 일었던 1901∼39년 참정권 운동 자료로 '프랑스여성참정권연합'대표였던 세실 부른스빅(1877∼1946)이 남긴 자료를 확보했다. 이 자료는 1940년 나치가 압수하여 베를린에 보관하던 것을 소련군이 베를린 점령 당시 모스크바로 이전하여 보관, 2000년 다시 프랑스로 되찾아온 귀중한 자료다. 이 외에도 여성운동 첫 번째 물결 연구를 위한 또 다른 자료로, 프랑스 시민단체법이 만들어진 1901년 30개 여성단체가 연합하여 만든 프랑스여성단체연합의 자료와 마르세유의 여성운동가 로르 베둑이 남긴 자료를 확보했다.

68년 5월혁명 이후 오늘에 이르는 여성운동 제2의 물결에 대한 자료로는 사회당 국회의원이었으며 미테랑 대통령 당시 여성부 장관을 역임한 이베트 루디의 자료와 여성기자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여성경비대(Chiennes de Garde)라는 여성단체를 만든 플로랑스 몽트레노의 자료, 그리고 '프랑스여성기자협회' 20년의 자료를 확보했다.

이 단체는 주요 사업으로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는 여성사 관련 자료를 총망라하는 색인 자료집인 '여성사 연구자료 가이드: 프랑스 혁명부터 현재까지'를 준비하고 있다.

장미란/ 파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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