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숨겨진 은유·상징 찾는 재미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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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카

그림 속에 깊이 있는 은유와 의미를 담고 있는 수준 높은 그림책이 나왔다. 단순한 줄거리와 심상치 않은 그림이 조화를 이뤄 읽는 이를 끝없는 상상의 나라로 데려가 준다.

폴란드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신작 '파란막대·파란상자'(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글·그림, 이지원 역, 사계절)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도 함께 보면 좋은 책이다. 앞뒤로 읽는 쌍방향 편집이 독특하고 앞뒤에서 서로 다르게 시작한 이야기가 책 한가운데서 만난다는 줄거리도 신기하다. 우아하면서 신비로운 작가의 일러스트 속에는 마치 수수께끼처럼 다양하고 흥미로운 해답이 숨겨져 있다. 행간을 채우고 있는 여백은 우리에게 또 다른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성평등 관점으로 아이들 창조성 다뤄

마흔 살이 넘은 여 작가는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다루고 있어 더욱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기존의 시각을 뒤집어 여자아이들은 수학과 과학에 능하고 남자아이들은 창의성과 주위를 배려하는 마음이 깊은 것으로 표현돼 있다. 단순히 성별 성향이 역전된 것이 아니라 수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발휘되는 아이들의 창조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림 구석구석 숨겨진 힌트와 은유를 숨은 그림 찾듯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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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그림책 '파란막대·파란상자'는 아홉 살 생일을 맞이한 소녀 클라라와 소년 에릭이 각각 파란 막대와 파란 상자를 선물로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파란색 상자와 막대는 낡은 공책과 함께 두 아이의 손에 쥐어진다. 함께 받은 공책을 펼쳐보니 이 막대와 상자는 집안 대대로 클라라의 언니와 엄마와 할머니들, 그리고 에릭의 형과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이 아홉 살이 됐을 때 받은 것이고 각기 어떻게 파란 막대와 파란 상자를 사용했는지 기록한 그림과 글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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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 집안의 여자아이들은 파란 막대로 애완용 생쥐를 훈련시키기도 하고 눈밭 위에 정확한 눈을 그리는 데 사용하기도 했으며 해시계를 만들기도 했다. 에릭 집안의 남자아이들은 파란 상자 안에 100명의 사람을 집어넣거나 얼음을 얼려 작은 코끼리를 위한 스케이트장을 만들기도 했다. 클라라와 에릭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파란 막대와 상자가 각기 다르게 쓰인 것을 보면서 자신들도 멋진 이야기를 공책에 적겠노라 다짐한다.

도대체 파란 막대와 파란 상자는 무엇에, 어떻게 쓰는 물건일까. 해답은 바로 막대와 상자를 받게 되는 사람과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머릿속에 있다.

한국·폴란드 간 출판교류 물꼬 트기도

이 책의 저자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는 '디즈니류'상업출판물이 휩쓸고 있는 폴란드의 어린이 책 시장에서 예술성 높은 작가주의 일러스트레이션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소수의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사람이다. 국내에도 '생각''발가락' 등의 그림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2003년에는 '파블로코프스타-야스노젬스카 시화집'으로 바르샤바 국제 책 예술제에서 '책예술상'을 받았다. 이번 책은 외국작가와 국내의 사계절출판사가 직접 손잡고 만든 것으로 국제교류를 통한 그림책 출판의 성과이자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15일까지 문화일보 갤러리서 원화 전시회

때맞춰 한국과 폴란드 수교 15주년을 기념해 주한폴란드대사관이 주최하는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전시회가 15일까지 문화일보 갤러리에서 무료로 열리고 있다. '파란막대·파란상자'의 신비롭고 아름다운 콜라주 원화를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정림 기자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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