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반 디크(Philip van Dijk),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는 아브라함, 1708-18, 50х41,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필립 반 디크(Philip van Dijk),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는 아브라함, 1708-18, 50х41,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남녀 간 위계질서는 유교문화뿐 아니라 구약성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기를 잉태하지 못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마침내 자신의 몸종인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허락함으로써 아들 이스마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늘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처럼 이후 사라가 늦은 나이에 이삭을 낳으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자식이 필요해 하갈을 일종의 도구로 썼던 사라의 마음은 고마움에서 질투로 변하게 되고 끝내 하갈 모자를 내쫓는 결말로 이어진다.

위 그림은 하갈과 이스마엘이 쫓겨나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하갈은 아브라함을 유혹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가정의 대를 잇는 막중한 임무를 위한 도구로 쓰인 일종의 피해자였다.

페미니즘 시각으로 보면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림을 그린 남성 화가의 이중적 시각이다. 화가는 화면 한구석에서 이삭의 손을 잡은 사라의 정숙한 모습과 대조적으로 하갈을 그렸다. 가슴을 드러낸 하갈을 화폭 가운데 배치하고 밝게 처리해 품행이 단정치 못하고 성적으로 유혹적인 이미지를 극대화했다. 이 장면은 하갈 모자가 쫓겨나는 게 정당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진실을 은폐한 채 한 여성을 가정파탄의 주범으로 낙인찍어, 여성이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을 고발하는 이중적 해석을 가능케 한다.

여성의 시샘과 질투가 빚은 또 다른 여성의 피해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라는 뒤에 숨은 듯 몸 전체를 드러내지 않지만, 그의 질투가 하갈 모자를 쫓아내는 데 얼마나 강하게 작용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남편의 사랑을 나누는 것에 대한 불안감, 주인의 자녀를 출산한 몸종의 신분 상승에 대한 질투 등 복잡한 심정이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을 쫓아낸 것이다. 여성의 복잡한 심리적 상황은 결국 남성인 아브라함의 결정 하나로 정리된다.

구약성서 내용을 그린 그림에서 성경 내용을 배제하고 페미니즘적 시각에서만 논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당시 여성들이 자녀 출산이라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을 때 겪은 불편과 남성의 필요에 의해 여성의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들을 보면서 구약시대의 가부장적·성적 위계질서의 강한 영향력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이은주 사회학자·작가 ⓒ이은주씨 제공
이은주 사회학자·작가 ⓒ이은주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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