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무죄→2심 금고 4년…"불특정 다수 큰 고통"
독성 물질 CMIT·MIT와 폐질환 등 인과 인정
인체에 치명적인 화학물질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가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1심 무죄 판결 이후 3년만이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서승렬)는 11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74)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65) 전 애경산업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형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회사 관계자 등 11명에게도 금고 2년∼3년 6개월을 선고했다.
금고는 징역형처럼 교도소에 수감되지만 강제노역은 하지 않는 형벌이다.
재판부는 "장기간에 걸쳐 전 국민을 상대로 가습기살균제의 만성 흡입독성 시험이 행해진 사건"이라며 "불특정 다수가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큰 고통을 겪었고, 피해자 상당수는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피해를 입는 등 존엄성을 침해당했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많은 국가적·사회적 비용이 소요됐을 뿐 아니라 완전한 피해 회복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피고인들도 긴 수사 등 정신적 고통을 받았지만 피해자나 그 가족의 고통에 비할 수 없어 엄정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각 회사에서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를 제조·판매해 98명이 폐 질환이나 천식 등을 앓고 그 중 12명을 사망케 한 혐의로 2019년 7월 기소됐다.
2021년 1심은 CMIT·MIT와 폐 질환 등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전문가들의 연구를 고려하면 CMIT·MIT가 이 사건 폐 질환 또는 천식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키기 어렵다는 판단은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살균제 사용과 폐 질환의 연관성을 인정했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1994년부터 시중에 유통된 가습기살균제 사용자들이 폐 손상 등의 피해를 본 사건으로, 2011년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앞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나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성분이 포함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옥시의 신현우 전 대표는 제품과 피해자들의 사망 간 인과관계가 인정돼 2018년 1월 징역 6년이 확정됐다.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은 CMIT·MIT 성분과 피해에 대한 인과관계가 확정되지 않아 2016년 첫 수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이후 역학조사 자료가 쌓이면서 수사가 재개됐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지원 대상 피해자는 5691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사망자는 1262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