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짓수 스파링을 하는 모습. 사진=양민영 작가 제공
주짓수 스파링을 하는 모습. 사진=양민영 작가 제공

작년에 인상 깊게 읽은 소설 가운데 ‘나의 친구 스미스’가 있다. 처음에는 제목에 언급된 인명 스미스가 당연히 외국인 친구를 뜻하는 줄 알았다. 그러다가 도입부를 읽고 스미스가 헬스장의 스미스 머신, 즉 바벨 양쪽에 레일이 달린 트레이닝 머신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평범한 회사원이던 한 여성이 운동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는 이야기다.

작가인 이시다 가호는 실제로 운동광인 것 같다. 그렇지 않고는 운동을 통한 몰입의 황홀함, 무겁고 차가운 바벨을 들어 올리는 감각, 역도 기술에 관한 묘사, 헬스장의 여성 회원들끼리 주고받는 대화를 이처럼 실감 나게 재현할 수 없다. 작가의 페르소나인 주인공 U노는 매력적인 상대에게 빠져들듯 운동을 사랑하게 된다.

보통의 독자보다 더 쉽게 ‘나의 친구 스미스’에 감정 이입할 수 있었던 건 나도 작년에 주짓수 대회에 출전한 경험이 있어서다. 특히 주인공의 멘토가 “대회에 나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역시 외부를 향해 무언가를 주장하는 것이 그러지 않는 것보다 가치 있다”고 하는 대목에 공감했다. 그가 말한 ‘나를 한 꺼풀 탈피하는 것’이 주짓수 대회에 도전했던 여러 이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U노의 용감한 도전에는 석연찮은 의구심이 따라붙는다. 알고 보면 웨이트 트레이닝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여성과 남성이 이분화돼 있고 여성이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요한다. 대표적인 예가 여성이 남성처럼 근육을 크게 키우면 점수를 받긴커녕 되레 감점당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근육을 키우되 여성스러움은 잃지 않아야 한다. 또 태닝, 제모, 비키니 착용이 필수이고 발목이 꺾이도록 높은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

주인공은 그것들이 근육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라고 선해하며 인내한다. 그러나 환한 미소와 표정 연기에서 마침내 폭발한다. 그는 반론한다. “일부러 웃고 가부키 배우처럼 짙은 화장을 하고 그런 건 근육이랑 상관없잖아요?” U노는 평소 화장하지 않고 머리도 짧았던 탓에 보디빌딩 대회를 준비하다가 웨이트 트레이닝까지 싫어질 위기에 처한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여성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뛰어든 운동의 세계에서 오히려 여성다움을 강요받는 아이러니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나도 주짓수 대회에 출전하면서 체급을 맞추느라 체중 감량을 시작했는데 이왕 감량한 김에 경량까지 내려가고자 감량을 멈추지 않았더니 체중이 10킬로그램도 넘게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훈련 중에 다쳐서 정형외과에 들렀다. 병원의 물리치료사들은 내가 주짓수를 배운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 여성 치료사는 일부러 주짓수 스파링 영상을 찾아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짓수를 하면 날씬해지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사실 주짓수를 시작할 무렵부터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고 갈수록 체중이 늘었다. 그러나 그건 주짓수와 상관없이 내가 꾸밈노동과 다이어트를 관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네가 주짓수 때문에 못생겨진 거라며 애꿎은 주짓수에 원망을 퍼부었다. 분명한 건 이전의 모습으로 병원에 갔다면 내가 주짓수를 하든지 말든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몹시 씁쓸했다.

U노도 체형이 달라지고 미용에 힘을 쏟자 주변 사람들의 태도가 정중해지는 걸 느낀다. 그는 ‘인간은 결국 뛰어난 외모를 사랑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소설의 결론은 아니다. 구태의연한 여성성과 외모지상주의에 내다 꽂을 카운터펀치가 남아 있다.

몸을 단련하는 운동에 몰두하다 보면 기존의 여성성을 강요당하는 상황과 직면할 때가 있다. 그건 아직도 운동이 남성적인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여성이 운동을 시작하고 여성만의 운동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심각한 정면충돌도 그 옛날의 웃지 못할 해프닝이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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