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병탁의 R부자 칼럼 ⓒ여성신문
우병탁의 R부자 칼럼 ⓒ여성신문

경험이 많다는 것은 대개 어떤 일을 결정하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경험이 많다는 점이나 혹은 어떤 일을 경험했다는 사실이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낳기도 한다. 얼마 전 딸아이의 4세대 아이패드 새 제품을 구입한 지 몇 개월 만에 액정이 깨졌다. 그리고 아이패드는 서비스센터를 통해 수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했다. 구입 당시 보험에 가입했으면 같은 제품으로 교환을 해줄 뿐이라고 한다.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도 보험 가입 여부가 기억나질 않았다. 서둘러 보험 가입 여부를 알아봤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결국 사설 수리업체를 통해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 액정을 교체했다.

분명히 살 때 수리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텐데 왜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을까? 바로 경험 때문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의 가격은 대개 제품의 가격이 높은 편이다. 고장이나 분실을 대비해서 보험을 들어야 할 유인이 많다. 그런데도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매번 구입할 때마다 보험에 가입했었다. 그런데 그동안 보험에 가입한 때에는 보증기간 내에 해당 제품을 잃어버리거나 부서진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아이가 사용할 것이라 통상 집에서만 사용할 것으로 생각했다. 당연히 분실의 염려도 없고 고장의 염려도 적다고 생각했었다. 결국 그 경험이 잘못된 선택을 낳았다.

부동산투자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자제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돈이 들기 때문에 투자를 결정하기까지 더 많이 고민한다. 그런데도 실수가 일어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정확히 분석하자면 경험 때문만은 아니다. 정확히는 제한된 경험에서 오는 선험적인 판단 오류 때문에 실수가 일어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2023년 하반기 들어 경기도는 물론 서울 지역에서도 아파트 가격 추이가 다시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현시점에서 보자면 그간 상승 폭이 줄어들긴 했어도 그래도 가격은 플러스였는데 추세가 또 한 번 바뀐 것이다. 심지어 서울과 경기도 수도권 지역에서도 종전 최고가 보다 몇억원씩 낮은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있다는 기사가 자주 보인다. 그런데 사람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과거에도 2019년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에 걸치는 기간 동안 주간 및 월간 가격 동향을 보면 각각 전월, 전주, 전반기 대비 가격 추이는 마이너스였다. 그러면 2019년 연간으로는 가격이 그 이전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을까? 그래서 내 집 마련을 늦춘 사람들은 집을 싸게 살 수 있었을까? 일부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체적인 추이를 보면 당시의 그런 선택은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2018년에는 어땠고 2017년에는 어땠을까? 그리고 그보다 더 이전에는 어땠을까?

1997년 IMF 구제금융 신청 후 대한민국의 부동산가격은 아주 큰 폭으로 떨어졌었다. 아파트 등 주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2001년 전후로 아파트 등 부동산 가격은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지수를 기준으로 보자면 2002년 전후로 전 고점을 회복했다. 그리고 2007년 금융위기 때까지 가격은 상승했다. 다시 금융위기로 인해 아파트 가격은 떨어졌다. 이번에는 약 5년간 2014년 하반기까지 지수가 하락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상승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 기간 동안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에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 과정에서는 토지는 물론 지방의 저가 아파트에까지 투자로 볼 수 없는 수요, 즉 투기적 수요가 생겨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남산에서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4일 오전 남산에서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있었던 심각한 수준의 가격 하락 경험 때문에 부동산을 사야 할 시기를, 내 집 마련을 해야 하는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는 점이다. 물론 경험에 의한 선택은 반대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의 논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과거 부동산 가격이 떨어졌다가도 다시 올라가는 상황이 반복됐지만 그것이 앞으로도 항상 그럴 것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떠올라야 하는 생각이 있다. 설사 최근의 주택가격 보합이나 하락이 과거보다 더 큰 폭으로, 더 길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게 나의 상황에 과연 유리하겠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나 일부 다주택자인 경우가 아닌 대다수 무주택자나 1주택자의 입장이라면 더 그렇다. 투기를 위한 목적이 아니라도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당사자에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주택가격이 어떻게 될지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힘들다. 본격적으로 하락한다는 사람도 있고 다시 연간 상승할 거라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은 경험칙에 의한 판단을 내려놓고 시장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보는 것이다. 시장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나 자신을 분석해야 한다. 지금의 현금흐름은 어떤지, 모아 놓은 자금은 있는지, 대출은 지금 제도에서 얼마나 가능한지? 그래서 나에게 허용된 선택지는 어디까지인지? 이것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시장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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